동명 원작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만든 '라이온 킹'은 디즈니 사상 최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17일 개봉에 앞서 '라이온 킹'을 미리 본 CBS노컷뉴스 이진욱·김수정 기자의 감상평을 전한다. [편집자 주]◇ 진일보한 '기술력'…제자리걸음 '서사'/이진욱 기자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빚어낸 동물의 왕국은 경이롭다. 100%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태어난 야생동물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익히 봐 온, 동물원 철창에 갇혀 생기를 잃은 현실의 그들보다 훨씬 사실적이다.
극의 포문을 여는 해돋이 장면 등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봤던 대자연의 풍광이 익숙한 OST와 함께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털 한 올, 힘줄 하나까지 살려낸 동물들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에서 강조했던 의인화를 덜어냄으로써 철저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이러한 극사실주의는 '라이온 킹'이 품은 양날의 검으로 여겨진다. 놀랍도록 실제 같은 동물들 면면은 초반에 눈길을 확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다만 그간 의인화 한 동물 캐릭터에 익숙해진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야기 전개에 따른 감정이입이 어려울 법도 하다. 두세 마리 등장하는 수사자 캐릭터는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면 구분이 가능하나, 상대적으로 다수인 암사자를 구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그 단적인 예다.
디즈니가 그동안 야심차게 벌여 온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프로젝트 국면에서도 '라이온 킹'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은 엄밀히 따지면 단순 재현에 머물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한 '알라딘'(2019), '미녀와 야수'(2017)의 경우 그간 디즈니가 추구해 온 남성 중심 서사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복고(Retro)에 동시대성을 담아 새롭게(New) 해석하려는 이른바 '뉴트로'(Newtro) 현상과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라이온 킹'은 이러한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반세기 전인 1994년 이야기 전개를 충실히 따랐다는 이 작품은 수사자로 대변되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되는 권력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 험난한 투쟁의 여정과 열매는 오롯이 남성들 몫이다.
"너무 강렬하게 느껴진다거나 오리지널의 맥락을 잃는다거나 함으로써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는 연출자 의도는 기술력의 진보에 어울리지 않는 메시지의 정체를 불러온 듯하다. '라이온 킹' 실사화로 디즈니의 뉴트로 전략은 시험대에 올랐다.
◇ 디즈니의 안전한, 혹은 안일한 선택/김수정 기자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올해 디즈니가 선보인 작품(애니메이션·라이브 액션)은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았다. 원작이나 이전 시리즈의 좋은 점은 취하되, 2019년이라는 '현재'와 어울릴 수 있게 조금씩, 혹은 꽤나 손을 봤다.
'알라딘'은 술탄이 되려는 자아와 욕망이 강한 자스민을 탄생시키면서 진보한 여성상을 제시했다. '토이 스토리 4'는 줄곧 장난감으로서 사명을 중시했던 우디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완전히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얌전해 보였던 보핍을 가장 자유롭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바꾸기도 했고.
'라이온 킹'은 이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원작을 거의 똑같이 가져왔다. 심바, 날라, 무파사, 스카, 사라비, 티몬, 품바, 라피키, 자주 등 주요 캐릭터들의 성격과 설정이 그대로 유지됐다. 원작의 임팩트를 고스란히 안고 가면서 관객들에게 익숙함을 선사한다.
동물이 주인공인 라이브 액션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까 의문을 품었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디즈니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정교하고 훌륭한 기술을 마음껏 뽐낸다. '봐, 이것도 할 수 있어' 하면서 과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캐릭터마다 생김새의 특성이 돋보였던 애니메이션보다는 구분이 어려운 지점도 있다.
빨리 왕이 되고 싶어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죄책감을 지닌 심바가 깨달음을 얻고 망한 왕국을 구출한다는 이야기, 흥겹고 즐거운 OST, 실사로 봐도 귀엽거나 늠름한 매력적인 캐릭터가 잘 어우러졌다.
원작을 좋아한다면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원작이 너무나 잘 뽑혔기에, 굳이 실사판을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디즈니의 안전한, 혹은 안일한 선택이 만든 '라이온 킹'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