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오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에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다"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에는 어떤 전략이 숨어 있을까.
조 후보자는 14일 인사청문회준비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관 후보자가 되고 나니 과거 독재 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저의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됐다"고 밝혔다.
그가 지목한 논란은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전력이다. 조 후보자는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1993년 구속돼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99년 김대중 정부로부터 사면‧복권됐다.
논란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미스터 국보법'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다.
황 대표는 과거 안기부(현 국정원)가 1990년 당시 발표했던 범죄 혐의를 인용해 "사노맹은 무장공비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만들었다"며 법무부 장관 인선이 부당함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조 후보자에 대해 "국가전복을 꿈꾸던 사람"이라고 한 황 대표의 주장은 타당할까. 군사독재에 맞서고(1)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다고(2) 한 조 후보자의 발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1. 독재에 맞섬
정부종합청사에서 김영수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이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1995년 작성된 대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사노맹의 싱크탱크 격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로 사과원을 '이적단체'로 각각 다르게 규정했다. 사노맹은 폭력혁명을 추진한 단체라고 본 반면, 사과원에 대해선 사노맹에 동조하는 조직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조 후보자에게 적용된 법리는 '찬양‧고무 등'이 위법사항으로 적시된 국보법 7조 3항이었다. 피의자 조국을 직접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기보다 변란을 꾀하고 실행하려는 사노맹을 돕는 사과원의 이론가 정도로 봤던 셈이다.
사노맹 소속으로 각각 징역 15년과 무기징형이 선고됐던 백태웅, 박노해는 1998년 사면된 뒤 2008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됐다. 조 후보자는 1993년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양심수'로 지목됐다.
노태우 정부를 향해 '반(反)독재' 투쟁을 했던 과거사는 훗날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됐다.
#2. 경제민주화 추구이 대목에서 법원의 판결 내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조 후보자가 활동했던 사과원에 대해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혁명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로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 이적단체"라고 규정했다.
사과원이 주장하는 논리가 우리 헌법의 내용에 위배된다는 판결이다.
조 후보자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가 쓴 책 <성찰하는 진보>(2009)의 구절 속에 답변의 일부가 있다. 그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설명하면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순 극복을 추구했고, 그 모델로 당 지배 또는 관료 지배의 국가사회주의인 '현실 사회주의'를 거론하기도 했다"고 썼다.(268 페이지)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 같은 구상의 불가능성 또한 인정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소비에트 혁명'이나 빨치산식 투쟁, 공산당독재나 수령독재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같은책 269페이지)
요약하면 한때 국가사회주의 모델의 현실 사례들(구소련, 중공, 북한)을 검토한 적이 있으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현재는 수정된 입장에 서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왜 끌어들이는 것일까.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국가가 분배, 재벌의 독과점 완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조화 등을 위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자본주의 모순의 극복이 갈등의 중재 조화 등으로 약화됨을 알 수 있다.
과거 사회주의 이론 활동의 근거를 우리 법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 상의 '경제민주화' 개념에서 독점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사이에 놓인 간극과 모순을 절충, 타협할 여지를 찾는 셈이다.
조 후보자는 이 지점에서 교묘한 화술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를 추구한 시점에 대한 조작 때문이다.
그는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됐다"고 했는데, 1991년의 조국이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법원은 그가 출판에 참여했다는 '우리사상 제2호'의 내용을 근거로 책의 출판, 배포한 사과원을 이적단체라고 판단했다. 해당 서적을 정독했으나 '경제민주화'라는 대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헌법에 '경제민주화'가 적시된 것은 1987년 개헌에 따른 것이다. 만약 조 후보자가 대학원 시절 추구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면 법원은 헌법에 규정된 개념을 추진한 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또 그 구성원을 단죄한 셈이 된다.
(사진=이한형 기자)
반면 조 후보자는 당시 대법원 결정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1991년에 사회주의를 추구했으나, 2019년엔 경제민주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밝히는 것이 솔직하고 정확한 입장 아닌가.
사과원이 추구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조 후보자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펴는 진짜 배경이 궁금하다.
황 대표 등 한국당이 인사청문회에서 주장할 내용은 뻔하다. 사노맹과 연루돼 적을 이롭게 했다. 적은 북한이다. 조국은 북한을 이롭게 한 종북이다. 이런 삼단논법은 지겨운 색깔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좌파 사회주의 운동은 봉건적 세습독재 체제인 북한을 비판적으로 본다.
극우의 색깔론이 거악이라면, 그럴수록 종북과 진보적 이념을 철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가 무엇이 나쁘냐는 떳떳한 태도야말로 레드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국보법 핑계대며 경제민주화 뒤로 숨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주의를 경제민주화로 포장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우려스러운 또 다른 문제는 현실정치에 만연한 말 바꾸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청와대의 명분은 그가 사법개혁을 완수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반면 그에 대한 반대 여론 중엔 그가 평소 '친일 VS 반일', '민주 VS 독재' 등의 구도를 자주 활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의 입장과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적폐', '독재의 후예', '친일' 등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
한편 스스로 폴리페서를 경계했던 조 후보자는 민정수석과 법무장관 같은 임명직과 선출직을 구별지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조 후보자가 부산(PK)을 기반으로 총선 혹은 대선에 출마하려 한다는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왜 장관이 되려고 하는지 소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사회주의를 경제민주화로 둔갑시키지 않고, 장차 출마를 원한다면 강단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줄 때 '정치인 조국'에게 찬성 표를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