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충청남도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정부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천안=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일본에 대한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 철회와 한반도 지정학적 위치 극복, 평화경제 구축을 통한 남북 8000만명 단일시장 건설 등 3가지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대한민국"이라며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복절이었던 만큼 가장 관심이 쏠린 부분은 단연 일본을 향한 메시지 수위였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이달 초 한국을 수출 우대국가 목록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한 만큼, 강경한 반일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차분한 외교적 해법을 선택했다.
대신 과거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일본 일부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국제사회의 기대와 다른 길을 걸으려는 아베 내각의 우경화 행보를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광복은 우리에게만 기쁜 날이 아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년 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동아시아 광복의 날이었다"며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됐다"고 규정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 진주만까지 급습하며 2차 세계대전 발발의 장본인이었던 일본 제국주의를 직접 비판하기보다는 "일본 국민도 군국주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현재 아베 내각으로부터 일본 내 양심적 국민을 분리하고자 시도했다.
대신 "우리는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웃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점잖게 훈계했다.
이웃 국가들에 큰 상처를 준 아픈 과거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는 아베 내각조차 넉넉한 아량으로 품을 수 있다는 뜻도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또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다.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책임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 등을 언급하며 단호한 대응과 도덕적 우위를 동시에 강조했다.
15일 오전 충청남도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정부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천안=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이날 약 27분간 진행된 경축사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표현은 딱 두 번 사용했다.
특히 이번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된 일제시대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 위안부 피해자 등 구체적인 과거사를 직접 언급하지도 않았다.
취임 첫 해부터 일본의 제대로 된 과거사 직시 필요성과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투트랙'으로 대응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온 만큼, 일본의 태도 변화 여지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을 향해 강경한 메시지를 최대한 자제하고 평화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동시에, 도쿄 올림픽이 동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했으면 한다는 희망섞인 기대는 국제사회 여론전에서도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높이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