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연합뉴스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과 함께 '롯데리아 회동'에 동원됐던 정보사 정성욱 대령이 CBS노컷뉴스에 '12·3 내란사태'에 대해 "후회된다"고 첫 심경을 밝혔다.
진급을 미끼로 자신에게 접근한 노 전 사령관에 대해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지시했는지 원망스럽다"며 "평생 공작업무만 해서 법률을 모른 채로 바보같이 상관의 지시를 따른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18일 정 대령은 자신의 변호인 김경호 변호사를 통해 CBS노컷뉴스에 내란사태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정 대령이 언론에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대령은 지난해 10월 노 전 사령관의 전화를 받았다. 과거 상관이던 노 전 사령관은 1년에 한 번씩 정 대령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곤 했는데 이번엔 대뜸 '진급'을 언급했다.
정 대령은 "통화를 할 때부터 노 전 사령관은 내가 (당시 발생한 내부 사고로) 직무분리 상태인 것을 알고 있었고, 진급이 힘들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며 "본인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하고 친하니까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정 대령은 "그러면서 나한테 예비역 장성들 교육용으로 사용할 부정선거 관련 책자를 정리해 달라고 했다"며 "문상호 정보사령관 역시 내게 노 전 사령관을 도우라고 해서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자료들을 정리해 노 전 사령관에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한 달 뒤 정 대령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과 관련된 첫 지시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10일 롯데리아 회동의 또다른 참석자인 정보사 김봉규 대령이 노 전 사령관에게 받은 A4용지 10여장을 정 대령에게 건넨 것이다.
정 대령은 당시 어두운 차 안에서 서류를 받아 곧장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정 대령은 "김 대령으로부터 받은 서류는 1장에 2쪽씩 인쇄돼 있었고 글자는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라며 "다음날 출근해 살펴봤더니 앞부분에는 부정선거와 관련한 내용이었고, '계엄'이라는 단어도 있었으며 나와 관련된 내용은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었다"라고 했다.
정 대령은 "노 전 사령관이 확인 후 세절(파쇄)을 지시했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부분만 간단히 옮겨 적고 원본은 세절했다"라며 "(체포 지시가 떨어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명단 30명과 구매할 물건 목록을 A4용지 ¼ 크기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날 오전에도 문 전 사령관이 나를 불러 '장관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 선관위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라며 "사령관의 이야기가 없었으면 서류를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정 대령은 계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일 계엄선포 직전 100여단 본부에서 문 전 사령관으로부터 '합동수사본부 제2수사단' 명찰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자 "진짜 계엄이 일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TV를 보며 대기하던 정 대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아, 진짜 계엄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임무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연합뉴스정 대령은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문 전 사령관의 호출을 받고 지난해 11월 17일과 12월 1일 두 차례 경기도 안산의 롯데리아를 찾아 계엄 계획을 전달 받았다.
이 자리를 주도한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부정선거 관련 인물들에게 겁을 주거나 폭력을 가해서 전말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 또 야구방망이나 케이블타이, 제단기 등 물품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정 대령은 "노 전 사령관은 검은색 상하의 차림으로 롯데리아로 들어왔다"라며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할 일을 지시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함께 회동에 참석한 정보사 김 대령에게는 선관위 직원을 감금하도록 지시했다. 정 대령은 "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12월 4일 선관위 인사부서에 가서 직원명단을 가져와 내게 전달하라고 했다"며 "체포 대상인 선관위 직원 30명을 모아둘 회의실을 확보하거나,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자를 찾아서 자수글을 올리게 하란 지시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같은 계엄 계획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서도 확인된다. 노 전 사령관은 자신의 수첩에 알파벳으로 등급을 나눠 '수집(체포)'과 '수거(사살)' 대상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으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문재인 전 대통령 같은 정치인부터 방송인 김어준 씨를 비롯해 유시민 작가, 김제동 씨, 축구선수 출신인 차범근 전 감독 등 연예계 인사들도 '좌파'로 지목돼 이름이 기재됐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무산되면서 노 전 사령관의 계획은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나 김 전 장관, 노 전 사령관 등이 주도한 계엄에 휘말린 군이나 경찰 부하들은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계엄 준비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정 대령은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힘들다"라며 "오로지 조직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작업무를 했는데 법에 무지해 이렇게 된 것이 후회되고, 나를 여기로 끌어들인 지휘관과 노 전 사령관이 원망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