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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18년 중 12년 옥살이…투사 '늦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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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생애 마지막 18년 중 12년 옥살이…투사 '늦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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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간도 연대기 ⑨] 민주·통일운동 거목 故문익환 목사
    북간도 명동촌 기독교 민족주의 뿌리 한국 사회에 이식
    벗 윤동주·장준하 죽음…학자서 사회운동가로 변곡점
    기념비적 통일운동…민주·민족의식 바탕 북간도 정신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극단의 시대와 치열하게 맞선 투사의 호는 '늦봄'이었다. 말 그대로 늦은 봄. 늦게나마 부조리한 세상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을 실천에 나서겠다는 깨달음의 열매다. 바로 한국 사회 민주·통일 운동 거목으로 꼽히는 고 문익환(1918~1994) 목사 이야기다.

    문 목사는 오롯이 늦봄으로 살았다. 지난 1976년 박정희 독재정권 당시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59세에 첫 투옥된 이래 1994년 77세로 사망할 때까지, 생애 마지막 18년 가운데 11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까닭이다.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박정희(1917~1979) 사후 또다시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던 전두환 정권을 몰아낸 1987년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 이 작품은 앞서 간 민주열사들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문 목사의 유명한 연설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만큼 문 목사는 당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러한 문 목사를 늦봄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절친했던 두 벗 윤동주(1917~1945)와 장준하(1918~1975)의 뼈아픈 죽음이었다. 생전 그는 "동주도 그렇고, 준하도 그렇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라고 자주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BS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상근 목사는 "당신(문 목사)도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윤동주 같은 그런 깨끗한 시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퍽 괴로워하셨던 것 같다"며 "윤동주에 대한 그리움, 윤동주가 지향했던 독립, 이런 것을 한쪽 가슴에 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향 친구 윤동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문 목사의 시 '동주야'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래는 해당 시 일부다.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는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후략)'

    ◇ 해방된 조국 휘감은 분단·전쟁·독재 그리고 벗들의 죽음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문익환 목사 고향은 북간도 명동촌이다. 일제강점기 아래 나라 밖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이어간, 한인 사회 구심점이던 이곳에서 그는 문재린(1896~1985) 목사와 김신묵(1895~1990) 여사 사이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자랐다.

    서굉일 한신대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 때 북간도 기독교가 키웠던 두 사람 있다고 하면 거의 같은 해에 태어났던 윤동주와 문익환"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윤동주는 일제 침략에 항거한 기독교 신앙의 시를 쓰다가 결국 일제 감옥에서 옥사했다.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가 '이 민족이 분단된 상태로 90년대, 2000년대를 갈 수 없다'는 이유로 북쪽을 찾아갔던 문익환 목사는 통일운동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그런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적 존재였다.)"

    일제가 패망한 뒤 북간도에서 해방된 한반도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지만,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과 6·25전쟁, 독재정권과 같은 엄혹한 현실은 문 목사의 의식을 옥죄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문 목사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문익환 목사와 (신구교) 성경 공동번역할 적에 제가 참여를 해서, 그때 문 목사를 처음 뵀다"며 "그때 정말 학 같았다. YMCA 회관에서 회의 때 이렇게 보면 '야, 저 양반은 참 학 같은 분이구나'(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문 목사의 생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또다른 벗이자 당대 박정희 정권에 맞서 반독재 투쟁을 이끈 '재야 대통령' 장준하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김상근 목사는 "(문 목사에게) 맡겨진 일이 학생들 기르는 일이고, 당시에는 성서를 번역하는 일이었다"며 "그런데 장준하의 죽음이 자기한테 큰 부름으로 왔던 것이다. 장준하의 죽음을 부둥켜안고 '준하야, 네가 이루지 못한 것 내가 이어가겠다', 이렇게 결단을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 "말씀 실천하는 부류 항상 소수…그 소수가 역사 이룩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장준하의 죽음을 목격한 문 목사는 결국 이듬해인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민주화운동 최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 59세였다.

    이후 1980년 '내란 예비 음모죄' 등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른 그는, 한국 현대사에 큰 사건으로 기록된 1989년 북한 방문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이는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이어진 특단의 선택이었다. 당시 정부 허가 없이 이뤄진 이 방북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김상근 목사는 "'국민이 통일 주체로서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국민의 참여 공간을 열었다"며 "문 목사의 방북으로 말미암아 (당대) 민간에서 금기처럼 돼 있는 민족평화통일 운동에 들어갈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분명히 만들었다"고 평했다.

    문 목사는 이로 인해 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지만, "진정한 민주주의 완성은 통일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증오와 대립보다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문 목사의 방북은 통일운동 가운데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역사학자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당시 문 목사와 북한 김일성(1912~1994) 주석의 합의 내용이 이후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공동선언'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하는 부분이 참으로 흥미롭다"며 "많이 늦었더라도 우리가 처한 남북관계 문제는 이제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좋은 상상력을 얻을 때"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통일운동을 뿌리내리고 꽃피운 지도자로서 문 목사가 지녔던 특별한 민주·민족 의식은 그의 사상과 실천을 떠받친 북간도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상근 목사는 "민주화운동에 치열하게 자기 몸을 던졌던 분들, 어느 경우에는 현실 정치에 자기 몸을 던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감옥 속에 던지기도 했던 그분들이 지녔던 신앙의 기초·기반은 역시 북간도의 민족주의적 신앙"이라고 진단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역시 "192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 신앙의 주류는 예수천당이다. 말씀을 실천하는 부류는 항상 소수였다"며 "지금만 소수가 아니라 그 당시에도 소수였는데, 그 소수가 사실은 역사를 이룩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늘 이 시대에도 정의와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아갈 그 방향을 향해 노력하는 그 사람들이 결국 역사에 생존하게 된다"며 "그 사실을 우리는 기독교 역사·민족운동·독립운동을 통해 잘 터득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리죠. 이는 당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10월 17일 개봉을 앞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숨겨진 가치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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