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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에 태풍까지 '난리통'…산불 이재민 "가혹하다"

영동

    산불에 태풍까지 '난리통'…산불 이재민 "가혹하다"

    산불 피해지역, 강릉 옥계면 378.5㎜ 많은 비
    마음 다 잡고 농사지어 온 주민들 농작물 피해
    "불 폭탄에 이어 물 폭탄까지…이럴 수 있나" 허탈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마을로, 강한 비바람에 농작물이 쓰러져 있다. 주민들은 나무가 사라진 데다 사전에 배수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토사물이 마구 흘러 내려와 피해가 컸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난 4월 '불 폭탄'을 만나서 40~50년 동안 가꿔온 삶의 터전을 잃고 슬퍼했는데, 또다시 이렇게 '물 폭탄'을 만나니까…. 이건 아니야, 이거는 아니지…."

    태풍 '미탁'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복구작업이 한창이지만, 못내 서러움을 토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발생한 산불피해 이재민들이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일상생활로 복귀하려고 애쓰던 주민들은 이번 태풍으로 '물 폭탄'까지 겹쳐 농작물 피해를 보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릉 옥계면에 들어가는 길목 도로로 새빨간 토사물이 차도까지 흥건히 흘러내렸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난 4일 오후 찾은 강원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마을. 112세대가 사는 이 마을에서는 지난 4월 발생한 산불로 23세대가 집을 잃었다. 현재 일부는 여전히 임시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고, 일부는 새집을 지어 살고 있다.

    임시 거주지에서 사는 변옥녀(여·71)씨는 취재진과 만나 태풍으로 컨테이너가 날아가 버릴까 걱정돼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산불피해 이재민 변옥녀(여.71)씨가 이번 태풍으로 쓰러진 배추와 옥수수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변씨는 "컨테이너 안에 있는데 바람 소리도 너무 크게 들리고 집도 들썩들썩하니까 불안해 계속 벌벌 떨었다"며 "이번 태풍으로 삼척지역에서 큰 피해가 난 것 등을 보면 이쪽 지역은 그나마 피해가 덜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산불 피해로 집도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마음이 심란하다"고 말했다.

    변씨 부부는 산불 피해를 겪은 이후 배추와 고추, 옥수수 등을 키우며 마음을 달래왔다. 하지만 태풍에 농작물들이 뽑히고 넘어가는 등 난리통을 겪자 끝내 울분을 토했다.

    변씨는 "산불이 발생해서 이번에는 농사도 많이 못 짓고 배추 등 일부 작물만 심은 건데 이렇게 피해를 보니 현실이 한심스러울 따름"이라며 "힘이 안 난다"고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태풍으로 피해를 본 변옥녀씨 부부의 밭으로, 일부 농작물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난 8월 새집을 지어 입주한 최석천(63)씨도 울분이 터지는 건 마찬가지다. 최씨는 "산불로 인해 참 뭐랄까 그 정신에 억지로,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서 벼농사를 지었다"며 "마지막 수확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물 폭탄을 맞으니 너무 허탈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태풍으로 벼가 쓰러졌는데 계속 방치하면 싹이 자라 먹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 세워줘야 한다"며 "면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워낙 다른 피해 상황이 많다 보니 도움 인력이 빨리 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무엇보다 최씨는, 산불 발생 이후 지자체와 산림청 등이 나대지가 된 뒷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토사물이 마을로 마구 흘러들어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석천(63)씨가 뒷산에서 흘러내려 온 토사물로 집 근처가 온통 진흙탕이 돼버린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최씨는 "산불이 발생한 뒷산은, 나무를 차로 실어나르기 위해 도랑을 메워 길을 만든 상태"라며 "비 피해에 대비해 물이 빠져나가게끔 도랑을 다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작업을 진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토사물이 그대로 인근 마을까지 내려오면서 뒷산과 바로 인접한 최씨 집 근처가 다 진흙으로 뒤덮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 최씨 집 주변에는 상당한 토사물이 쌓여 '갯벌'처럼 보일 정도였다. 배수관은 진흙에 파묻혀 있었다.

    현장에 나온 강릉시 관계자는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 큰 태풍이 발생하면서 시기가 맞물렸다"며 "비가 너무 많이 온 것도 문제지만, 나무를 옮겨심는 조림 작업이 이뤄졌다면 비가 와도 토사물을 막아 줬을 텐데 지금은 나대지가 돼서 피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도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군 병력 등도 지원받아 하루빨리 이물질과 토사물 등을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최석천씨가 산불 발생으로 나대지가 된 뒷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으로, 태풍으로 토사물이 휩쓸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사진=유선희 기자)

     

    산불 피해지역인 옥계면은 강릉에서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으며, 지난 2일부터 4일 오전 9시까지 378.5㎜의 누적강수량을 기록했다. 시는 태풍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농경지 피해접수를 받는 등 정확한 현황을 파악 중이다.

    한편 강원도에 따르면 태풍 피해로 현재까지 이재민 719명이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삼척 259세대 514명, 동해 89세대 108명, 강릉 48세대 97명 등이다.

    각 지자체와 경찰, 군인, 소방서, 자원봉사단체 등은 피해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태풍에 처참하게 파손된 도로로, 5일 복구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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