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를 지시한 것은 분명 ‘폭탄 발언’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2008년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이후 10년 넘게 방치돼 폐허처럼 변해가는 명승지를 그대로 놀려둘 땅 주인은 없다.
행여 남측이 적극적인 사업 재개 의향을 보였다면 모를까 오히려 그 반대다. 북측이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재개’를 제안했음에도 남측은 조건 미비를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금강산은 김 위원장이 강한 애착을 갖는 원산 갈마 프로젝트와 함께 묶어 개발하려는 곳이다.
하지만 ‘너절한’ 남측 시설은 꼼짝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 한시가 급한 젊은 지도자가 감정적 언사로 분통을 터뜨린 맥락이다.
심상진 경기대 교수(전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 총소장)는 “말은 좀 험했지만 이해 가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1년간 집세를 안 낸 세입자(남측)가 방도 빼지 않는 상황에 비유하며 “개인적 생각으론 (북측이) 오래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사후적 분석이지만, 그런 점에서 북측의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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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의 첫 반응은 당혹감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놀라는 게 더 놀랍다”며 누군가는 예상하고 대비도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어찌됐든 우리로선 허를 찔린 형국이다. 금강산 관광 중단이나 개성공단 폐쇄는 남측에 결정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북한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만약 북한 계획대로 ‘독자개발’이 현실화된다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핵심 토대가 사라질 판이다.
김 위원장이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여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한 것은 그의 복잡미묘한 심사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로선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의 첫 걸음부터 꼬이게 됐다. 어쩌면 김대중·노무현의 유산마저 지켜내지 못할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정권 내부에 위기의식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입장은 달라진 환경을 충분히 검토해 창의적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원론 수준이다. 관광 자체는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현금 지급에 따른 어려움을 거론하는 것도 이미 오래된 레퍼토리다.
그나마 정부는 한때 ‘조기 수확론’이니 ‘굿 이너프 딜’이니 하며 상상력을 편 적이 있다. 개성공단 임금 등의 현물지급이나 에스크로 방식 등 다양한 제재 우회 아이디어도 거론됐다.
하지만 미국의 완강한 반대에 지친 탓인지 언제부턴가 사실상의 체념 상태가 이어져왔다. 올해 들어 한미워킹그룹이 10차례 개최됐지만 개성공단은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희한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론이다. 북한이 지금은 저러고 있지만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자연스럽게 남측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미신 같은 믿음이다.
결국 김 위원장의 이번 금강산 메시지는 한 마디로 꿈 깨라는 소리다.
남측이 계속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설령 제재가 해제되고 북한 경제가 개방되더라도 동족이란 이유로 우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최후통첩에 가깝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같은 민족이라 해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대우할 수 있다는, 선대와는 다른 X세대 리더십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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