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기념 공연의 포문을 연 이루펀트(키비, 마이노스). (사진=김현식 기자)
지난 주말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자리한 <클럽 헤비="">(이하 헤비)에선 한국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특별한 공연인 <힙합트레인> 20주년 기념 공연이 펼쳐졌다.
1999년 <헤비>에서 첫 돛을 올린 정기 힙합 공연인 <힙합트레인>은 지난 20년간 뚝심 있게 그 명맥을 이어오며 대구를 넘어 한국의 힙합 문화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관련 기사 : "교복 입은 이센스 올랐던 공연, 어느덧 스무살 됐네요" [힙합트레인 20주년 기획①])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이번 공연은 총 3회(5월 18일, 8월 11일, 12월 21일)에 걸쳐 진행됐는데 기자가 현장을 찾은 마지막 공연의 라인업에는 가리온, 피타입, 이루펀트, 오사마리, MBA, 베이식, 식보이, 록스펑크맨, 이현준, 조원우, 래원, 아이스퍼프, 이로한, 탐쓴, 다이노티 등이 이름을 올렸다.
대구 <클럽 헤비>. (사진=김현식 기자)
'대구 인디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기도 한 <헤비> 안은 라인업에 오른 래퍼들과 뜻 깊은 순간을 공유하기 위한 관객들로 붐볐다. 연령층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했고, 남녀 성비는 5대 5 정도로 균등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20대 힙합 팬이라고 밝힌 추성훈 씨는 "<힙합트레인> 공연은 언제나 '레전드'이기에 이번에도 믿고 공연을 보러왔다"면서 "20년간 이어진 힙합 공연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대구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대구에 산다는 중학교 3학년 학생 김서현 양은 "SNS를 통해 평소 좋아하던 래퍼인 래원이 대구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연장을 찾게 됐다"고 말하며 설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구 ~ 소리 질러~ !"
공연 중반부 무대에 오른 이로한. (사진=김현식 기자)
공연은 오후 5시에 시작됐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건 키비와 마이노스로 구성된 힙합 듀오인 이루펀트. <힙합트레인>의 초창기부터 함께해 지금은 공연 기획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마이노스는 오프닝 곡을 부른 뒤 뿌듯함과 감동이 섞인 눈빛으로 객석을 바라보며 인사말을 건넸다.
"<힙합트레인> 보다 나이가 어린 래퍼들이 뒤에 많이 대기하고 있어요. 요즘도 행사나 페스티벌 외에는 신인 아티스트들이 라이브 무대를 선보일 곳이 많이 없는데,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들과 오랫동안 활동한 아티스트들간의 연결고리도 만들고 보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이런 멋진 부분을 함께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오늘 이곳에서 대구의 에너지를 같이 즐겨주세요"
마이노스가 언급한 '연결고리'는 20주년 공연을 함축하기에 적절한 키워드였다. 라인업에 오른 아티스들은 한국 힙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추위를 뚫고 현장을 찾은 관객과 대구를 넘어 한국 힙합 역사에한 페이지를 장식할 뜻 깊은 순간을 공유했다.
대구 출신 래퍼들에게 이번 공연이 갖는 의미는 더욱 남달라 보였다. '동대구역'이란 곡을 선보이기도 한 탐쓴은 "올해 나이가 스물일곱 살인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힙합트레인>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었다"며 기쁨을 표했다. 엠넷 '고등래퍼'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바 있는 조원우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어진 공연"이라며 "예전에 쓰던 작업실이 이 공연장 근처라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대구 출신 래퍼 조원우.(사진=김현식 기자)
특유의 묵직한 랩으로 좌중을 압도한 피타입. (사진=김현식 기자)
역시 대구 출신으로 힙합레이블을 이끄는 위치에 오른 베이식은 "랩을 잘하는 많은 아티스트들 덕분에 <힙합트레인>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힙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찾아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하다"며 "대구 출신 래퍼로서 앞으로 더 음악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공연은 밤 9시 40분쯤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러닝타임이 4시간을 훌쩍 넘어 5시간에 가까웠던 셈. "<힙합트레인>에는 힙합을 진정으로 즐기는 관객이 많아 좋다"고 말한 한 관객의 말처럼, 공연장 분위기는 마치 아티스트들과 관객이 한 데 어울려 대구를 대표하는 힙합 공연의 스무 살을 축하하는 축제 같았다. 공연을 마친 아티스트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동료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가리온(나찰, MC메타)과 DJ쥬스.(사진=김현식 기자)
뜨거웠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주인공은 대구가 고향인 MC메타가 속한 전설의 힙합 듀오 가리온. 멤버 나찰은 "<힙합트레인> 첫 무대에 올랐던 때를 잊지 못한다"며 "당시 오프닝을 꾸민 이가 이센스였던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아울러 그는 "오늘 음원 차트를 보니 힙합이 1, 2위더라"면서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힙합을 향해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하고 <힙합트레인>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한편, <힙합트레인> 20주년 공연의 축제 분위기는 러닝타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조명이 꺼진 이후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지키며 관객의 '셀카' 요청에 응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나 기자의 뇌리에 남은 장면은 공연장 근처 실내 포장마차에서 진행된 뒤풀이 현장에서 서로의 음악과 무대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앨범을 주고 받으며 긍정의 바이브를 공유하던 아티스트들의 모습. 스무 살이 된 <힙합트레인>과 같은 뿌리 깊은 로컬 공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 힙합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대구=CBS노컷뉴스 김현식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