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제주도개발공사 사무실 모습. 건물에 '노사 간 신뢰를 깨트리는 오경수 사장은 퇴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먹는 샘물 '제주 삼다수' 생산 기업인 제주도개발공사 노조가 공사 설립 24년 만에 첫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공사 측은 무책임한 태도로 교섭에 응하다 사상 초유의 파업을 맞게 됐다.
◇ 일방적으로 합의 깬 사측, 노사 간 신뢰 금가
제주도개발공사 노동조합은 27일 오전 9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전체 직원 765명 중 617명이 노조에 속해 있다. 이 중 취업규칙상 최소 근무 인원, 수습사원 등 44명을 제외한 삼다수 생산본부, 감귤 사업본부 등 573명이 파업에 참여한다.
지난 2월 출범한 제주도개발공사 노조는 7월부터 전국 지방공기업 중 최하위인 직원 평균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사 측과 교섭을 시작했다. 9월만 해도 노사 간 성과장려금 180%와 명절상여금 120% 등의 합의안을 동의했다.
그러나 갑자기 공사 측이 태세를 전환했다. 합의된 임금 인상안이 '지방공기업 예산편성 지침'상 규정된 4.2%를 넘어선다는 게 이유였다. 공사 측은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다 지난 23일 제주지방노동위원회 조정까지 갔지만, 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최종 교섭이 이뤄진 26~27일 밤샘 협상에서도 막판 합의안을 공사 측이 일방적으로 깼다. 노조가 성과장려금‧명절상여금 300%를 삭제하는 대신 9.9% 인상(복리후생비 5.7%+총인건비 4.2%)안을 받아들였지만, 돌연 공사 측이 합의를 깬 것이다.
허준석 제주도개발공사 노조위원장(사진 하단 오른쪽)이 2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공사 측이 일련의 교섭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노사 간 합의를 깨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서 공사 측에 대한 노조의 신뢰도 금이 간 모양새다. 허준석 노조위원장은 "경영진이 단체협약 의지가 없는데, 부당 노동행위를 회피하기 위해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번 교섭 과정을 중재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철 제주도의회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공사 측의 입장을 고려해 백번 양보했지만, 막판 협상까지 경영진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다 결국 총파업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개발공사 관계자는 "노조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노사 협상이 처음이라서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며 "앞으로 노조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파업 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감귤 가공 '차질'…파업 장기화 시 삼다수 '타격'
(사진=자료사진)
공사 설립 24년 만에 첫 총파업을 맞으면서 제주도개발공사의 주력 사업인 삼다수와 감귤가공 사업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노조는 오경수 사장, 이사 등이 경영진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파업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당장 심각한 건 감귤 가공사업이다. 감귤 수확기에 처리 난으로 24시간 운영되던 감귤가공 1‧2공장이 멈추면 하루 평균 690t 생산되던 감귤 농축액 등 가공품도 더는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500t 수준인 가공 처리 물량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면서 앞으로 유통센터와 선과장에 들어오는 가공용 감귤 처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내 먹는샘물 시장 1위 브랜드인 '제주삼다수'의 경우 한 달여 분(11만 2000t)의 비축 분이 있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도내외 유통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다수 생산 공장에 투입되는 인력 상당수가 노조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개발공사 관계자는 "감귤가공 공장은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로 감귤 농가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제주도와 대응책을 강구하겠다. 삼다수는 비축물량이 있어 당장은 공급에 어려움은 없다. 비노조원과 간부직원을 투입해 원활한 유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개발공사 오경수 사장은 노조의 총파업이 시작된 27일 오전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노사 합의 결렬 등의 사항을 거론하며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사장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제주삼다수 생산 공장.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