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27일 열린 SBS '가요대전'과 KBS2 '가요대축제'에서는 안전 사고와 방송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SBS, KBS 제공)
지상파 3사를 중심으로 열리는 연말 시상식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거대한 행사다. 방송 시간만 3시간 전후에 가까울 정도로 만만찮은 일정이긴 하나, 아무나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에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자리다. 참석자, 수상자 명단은 누가 빛나는 성취를 보였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평소 한 번에 모일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멋진 무대를 펼치거나 상을 받는 '축제의 장'. 이 같은 취지와 명분과 달리 연말 시상식은 수상의 공정성, 안전 사고 문제 등으로 개혁과 변화를 요구받아왔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하나도 안 일어난 때가 드물었겠으나, 올해는 특히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큰 부상과 방송사고가 일어나 '축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에는 레드벨벳 웬디가 SBS '가요대전' 특별 무대 리허설 중 무대 아래로 떨어져 크게 다쳤다. 2층 터널을 지나 리프트식 계단을 통해 1층으로 가야 했는데, 리프트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오른쪽 골반과 손목이 골절됐고 얼굴 부위도 다쳤다. 부기가 빠져야 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 확인된 의료진 소견만으로 '중상'이다.
지난 27일 방송된 KBS2 '가요대축제'에서는 에이핑크의 '%%'(응응) 무대가 중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에이핑크 멤버들이 퍼포먼스를 위해 무대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VCR 화면으로 전환돼,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퇴장해야 했다.
가수들은 좋은 무대를 만들고, 제작진은 그 무대가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일 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한 노동 환경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대에 오르는 이들도,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이들도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SBS '가요대전'에서도, KBS2 '가요대축제'에서도 그런 노동 환경은 조성되지 못했다. 웬디는 새 앨범을 내고 맞이한 첫 컴백 무대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해, 5인조인 레드벨벳은 웬디의 부상으로 아이린·슬기·조이·예리 4인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에이핑크는 오랜만에 팬들과 만나는 자리가 의도와 달리 강제 종료되어 속상한 마음을 SNS 글로 표현했다.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존중'이었다. 관객석을 채워주는 이들,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이 존중받는 환경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이고 싶다고 목소리 냈다.
정작 연말 시상식을 주최한 방송사들은 안전 불감증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미흡한 대응으로 다시 한번 비판을 받았다. SBS의 첫 번째 사과문에는 가장 피해가 큰 당사자 웬디를 비롯한 레드벨벳에게 하는 사과도, 어떤 경위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설명도 없고,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지 구체적인 계획도 대책도 빠져있었다. 그저 "출연진 안전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라는 말뿐이었다.
두 번째 사과문에는 사과해야 할 대상이 명시됐고,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내부 조사를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강한 질타와 지적이 쏟아진 지 하루가 지난 뒤였다. SBS의 무성의한 세 줄 사과문에 왜 분노가 쏠렸을까. 시상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담보하고 사고가 벌어지지 않게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사후 조처라도 제대로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SBS가 비판 폭격을 맞은 영향 때문이었는지, KBS의 사과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책임 프로듀서 명의로 작성된 사과문에는 '가요대축제'에서 일어난 문제 상황의 배경을 밝히고 에이핑크 멤버들과 팬들, 스태프에게 사과했으며, 제작 과정의 문제점을 검토해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알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흠잡을 데 없는 사과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앞선 두 사례는 사전 대비로 얼마든지 방지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연말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크게 다쳐 활동을 중단하거나 무대를 채 끝마치지 못하고 내려가고 싶은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혹시 '예전에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군말 없이 시상식에 참여했는데 왜 이렇게 유난인가?', '잘못은 했지만 여느 시상식에서도 통상 일어나는 일이다', '일어난 일에 비해 과한 비난을 받았다'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과거 관행이 그랬다 해도 그 관행은 당장 고쳐야 할 숙제다. 더구나 안전을 챙길 때 '지나침'이란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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