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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판사님은 왜 그 처벌불원서만 받아줬을까



뒤끝작렬

    [뒤끝작렬]판사님은 왜 그 처벌불원서만 받아줬을까

    염전노예 사건서 재판부 '상식 밖' 판단
    다른 사건 처벌불원서는 증인신문 거쳐 검수

    ①지적장애인이 법정에서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가해자를 벌한 재판부.

    ②지적장애인의 손도장이 찍힌 '처벌불원서' 한 장만 보고 공소를 기각한 재판부.


    놀랍게도 위의 두 재판부는 동일하다. 지적장애인들은 이른바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들로 위 두 사안은 실제로 비슷하다. 지적장애 정도는 ②번 사건의 피해자가 더 중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재판부에서 이처럼 다른 판단이 나오게 됐을까?

    2일 CBS노컷뉴스는 지난 2014년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1부에서 처리한 신안군 염전노예사건 피해자 7명의 '처벌불원서'를 확보해 재판부의 인정 또는 기각 배경을 들여다봤다.

    재판부는 7명 중 4명의 '처벌불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 명의의 처벌불원 합의서와 탄원서, 합의금 지급 영수증, 피해자의 주민등록증 복사본, 인감증명서, 본인서명사실확인서 등이 꼼꼼히 첨부된 경우에도 배척했다. 이들 중 피해자 A씨는 법정 증인으로 나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힌 이유는 "피해자들의 지능이나 지적 수준, 사회적응력 등에 비춰볼 때 처벌불원 의사표시의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의 상태와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해 처벌불원 의사를 매우 엄격히 판단한 것이다.

    형사재판을 주로 맡아온 한 부장판사는 "지적장애인이나 미성년자 등의 처벌불원서는 인감증명서 등 사실확인을 위한 서류가 확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사와 피해자 변호인에게도 진의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상식적인 법관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처벌불원서'를 인정한 3건 중 2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직접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는 점을 법원 직원이 확인해 준 자료와 법정 증언 내용, 그 외의 정황 등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나 피해자 B씨의 사례에서만 재판부는 선고를 3일 앞두고 갑자기 가해자(피고인) 측이 제출한 '처벌불원서'를 별다른 확인절차 없이 인정했다. B씨의 '처벌불원서'에는 삐뚠 글씨로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쓰여 있고 지장날인이 되어있을 뿐 그 외의 다른 사실확인 서류는 없었다. B씨의 보호자가 없는 사이 가해자 측이 B씨를 찾아가 받아낸 것이었다.
    2014년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1부에서 진행한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재판에서 가해자 측이 지적장애인인 피해자 B씨의 지장을 찍어 법원에 제출한 처벌불원서.(실명 등 개인정보는 지움) 법원은 이 처벌불원서를 받아들여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공소기각했다.

     


    B씨는 지능지수 43의 지적장애 2급으로 다른 피해자들보다도 장애 정도가 심했다.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은 쓸 수 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다 외우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또 B씨의 후견인은 피고인 측의 합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재판부도 이러한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만 변론을 재개하거나 선고를 연기하지 않고 '처벌불원서'를 근거로 가해자의 근로기준법위반 혐의를 공소기각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영리유인·준사기·감금 등 다른 혐의들에 대해선 유죄 판단이 나왔지만 여기에서도 '처벌불원서'가 중요한 양형 참작사유로 반영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015년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형사1부는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도록 피해자(B씨)와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며 1심이 인정한 '처벌불원서'를 배척했다.

    B씨와 변호인은 1심 재판부의 행위로 인한 사법절차와 정신상의 피해를 호소하며 2017년부터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당시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1부 판사들의 어떠한 해명도 듣지 못했다.

    B씨의 변호를 맡은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양형 반영뿐만 아니라 공소기각도 할 수 있는 '처벌불원서'라면 더 세심하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명백히 1심 법관들이 잘못된 판단을 한 사안임에도 국가배상소송이 진행되는 2년간 단 한 번도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1심 재판 후 염전노예 사건을 지원하던 시민단체들은 해당 재판의 변호사가 목포지원장 출신 전관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여러 법조인들은 실제 '전관예우'라는 것이 존재하더라도 위의 경우처럼 노골적이고 상식에 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 소재 지방법원의 한 국선전담 변호사는 "대부분의 법관들이 최선을 다하지만 무심하고 부주의한, 때로는 미심쩍은 재판도 있기 마련"이라며 "그로 인한 피해가 제기됐을 때 법원행정처 주도로 적극적으로 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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