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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美아카데미 첫 입성…왜 '기생충'이어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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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美아카데미 첫 입성…왜 '기생충'이어야만 했나

    왼쪽부터 이정은, 봉준호 감독, 송강호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뒤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성한 첫 한국영화로 등극하면서, 그간 봉 감독이 쌓아 온 영화적 성과와 한국영화 위상 변화에 눈과 귀가 쏠린다.

    '기생충'은 다음달 9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편집상·국제장편영화상·미술상·각본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왜 그동안 수없이 문을 두드린 한국영화 가운데 봉준호 감독 '기생충'에게 길을 터 줬을까. 여기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추구해 온 가치 변화가 한 몫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14일 CBS와 나눈 통화에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수 년 전부터 인종·민족·젠더 경계를 초월하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화 시상식으로 도약하려 애쓰고 있다"며 "이번에 '기생충'을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확고하게 그러한 방향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이 최근 미국 현지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local)로 규정해 화제를 낳았던 점과 연결시키는 분석도 흥미롭다.

    영화평론가 이안은 같은 날 "봉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로 규정한 데는 아주 힙한 장르보다는 품위,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려는 이 시상식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배우 송강호가 연기상 후보에서 배제된 데도 자기네가 선호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한국 시장과 협업해 나가려는 취지로 읽힌다"고 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 역시 이날 "미국 사회는 자기네 문화가 확장성·포용성에 바탕을 둔 자의식을 지녔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는데, 봉 감독의 발언은 그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자극했을 것"이라며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시아 문화도 발빠르게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교양을 갖췄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봉 감독이 그간 차곡차곡 이뤄 온 영화적 성과가 최근작 '기생충'으로 전 세계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인정받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오동진은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처럼 한국적 특수성을 세계적 보편성으로 변주하는 뛰어난 시네아스트로서 봉 감독은 이미 전 세계 평단·마니아 관객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며 "결국 이번에 뛰어난 대중성까지 겸비한 '기생충'으로 전 세계 대중에게 소개되고 뿌리내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안은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2000)로 등장한 이래 봉 감독은 작가주의 성향과 상업주의 성향을 굉장히 잘 아우르는데,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성공 못한 영화가 없으면서도 자기 스타일을 계속 유지해 왔다"며 "아주 한정된 상황에서 계급·사회적 약자 등 사회 문제, 갈등 요소들에 대한 은유를 캐릭터에 주입하는 방식"이라고 평했다.

    ◇ '가족' 남겨둔 한 수…"미국 사회 '불온한 전복' 외면 피해"

     

    보편적인 공동체 최소 단위로 여겨지는 '가족' 개념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녹여내는 봉 감독의 문법이 이번에 '기생충'을 통해 미국 사회에 어필했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이안은 "봉 감독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굉장히 무정부주의적인데, 그 안의 가족은 유일하게 그렇지 않다"며 "구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인 가족마저 와해될 경우 대중은 불편해 하기 마련인데, 특히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이를 불온한 전복으로 여겨 지금과 같은 열광은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봉준호로 대표되는 한국영화 문법에 미국 사회가 신선함을 느꼈다는 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영화가 이례적으로 여러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점을 설명해 준다.

    황진미는 "부자와 빈자라는 두 가족을 표현하는 분명한 대비·대칭이 '기생충'의 특징인데, 이는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서 '기생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라며 "자기들이 늘 봐 온 할리우드 장르 영화 문법과 달리 선악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든 서사가 신선함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입성은 한국영화의 보편성을 보다 널리 알리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오동진은 "영화 매체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가 전제될 때 보다 넓은 보편성을 획득한다"며 "전 세계 수용자들의 자발적인 접근으로 자기 취향과 기호를 켜켜이 쌓아 올려 집적시킨 결과가 지금 한국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안 역시 "문화적 진입장벽을 허무는 데 있어서 수준 높은 영화제를 통하는 것은 언제나 물꼬를 트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미국의 경우 예술영화와 대중영화는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는데, 한국 영화감독들은 이 두 가지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지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셈"이라고 봤다.

    황진미는 "한국영화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박찬욱 감독 작품 '올드보이'(2003) 등으로 날 것 그대로의 폭력성과 같은 본질적 충격을 안긴 바 있는데, 여기에 더해 단기간에 장르적으로 굉장한 발전을 이뤘다"며 "이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자기네 사회와 딱 맞지는 않지만 본질을 건드리는, 진실을 토로하는 절규 같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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