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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원종건이 드러낸 '청년 영입'의 허구성



뒤끝작렬

    [뒤끝작렬] 원종건이 드러낸 '청년 영입'의 허구성

    스토리텔링 관심 끌었지만 '초고속 로그아웃'
    빈약한 인재양성 시스템 탓에 외부수혈 급급
    화제성만 노린 깜짝쇼? 외려 유권자와 괴리
    검증 과정에 '프로불편러' 있었다면 어땠을까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2호'인 원종건 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박수갈채를 받고 정치권에 깜짝 등장했던 '느낌표 청년'은 결국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피해 묵묵히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신세가 됐다. 15년 전 시각장애인 모친과 함께 전 국민을 울렸던 더불어민주당 2호 영입인재 원종건(26)씨 얘기다.

    역경을 극복했던 '짠한 스토리텔링'이 부각돼 각별한 관심을 끌었지만 초기부터 거론됐던 그의 사생활 문제가 끝내 그를 '초고속 로그아웃'으로 이끌었다. 아니, 데이트 폭행과 불법 촬영이 계속됐다는 전 여자친구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사생활을 넘어 범죄 영역에 해당할 수 있다.

    우려의 시선은 애초부터 적잖았다. '그때 그 꼬마가 이렇게 멋있게 자랐구나' 하는 감동 외에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강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원씨 자신도 '왜 꼭 원종건이어야 하는지' 설득하기를 주저했다.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답변만으로는 정치적, 정책적 역량이 증명될 리 없었다.

    그런 우려에 기름을 끼얹은 건 뒤늦게 회자된 한 온라인 게시판 글이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측으로부터 동시에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글이 과거 원씨 소속회사 익명게시판에 올라왔던 것. 그가 직접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에는 "조건과 대우가 다른 것 같다. 혹시 이쪽 부분 잘 아시는 분 계시냐"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그가 두 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노선보다는 그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을 찾아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는 이유다. 어쩌면 두 당이 어떻게 다른지, 그게 본인의 소신이나 철학과 어떻게 결부될지 애초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깜짝쇼'에 능한 민주당은 그런 원씨를 외부에서 수혈해 '총선용 땔감'으로 이용하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지기반이었지만 최근 균열이 생긴 20대 남성, 이른바 '이남자'를 공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흐뭇해했던 건 이 때문이었을 게다.

    이제 원씨가 영입인재 자격에 사표를 던졌으니 정치권에선 관련 논란은 언제나 그랬듯 '과거형'이 될 전망이다. "원종건이 미래다(이해찬 대표)"라던 민주당도 사생활 검증 실패에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원씨 역시 체면은 많이 구겼으나 "넘어지면 아프겠지만 또 도전하면 된다"던 영입 당시 자신의 말을 실현하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정치' 자체에 생긴 생채기는 어쩌나. 일련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정치 꿈나무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실정치 입문을 목표로 기성 정당 언저리에서 차근차근 역량을 쌓아가던 당직자, 보좌진, 청년단체 구성원 등은 이번에도 그저 허탈감을 토로할 뿐이다.

    문제는 정당 내부에 인재양성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미리 발굴해서 키우는' 개념이 짧은 우리나라 정당사에선 아직 익숙지 않다. 선거철마다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이합집산 과정에서 자꾸 정당이 사라지고, 만들어지길 반복하다 보니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그 시스템을 만들 유인도 크지 않았다.

    이렇게 가치나 철학, 노선, 이해관계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당장의 화제성만 추구할 경우 정당은 제 역할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종건씨와 민주당, 둘 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끊임없이 받는 지적, 즉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사진=연합뉴스)

     

    원씨에게 동시에 접근했던 한국당의 경우 일단은 "하늘이 도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시 인재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있더라도 청년들에게 충분한 권한과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성 정치도 마찬가지다. 남성 일색이던 정치권에 그동안 수많은 여성이 진출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젠더 이슈를 둘러싸고 최근 3~4년 동안 급격하게 바뀐 인식, 그 날카로운 잣대를 정치권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번 논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떻게 거기까지 검증할 수 있겠냐'는 항변도 일리는 있지만 젊은 사람들, 특히 20대 여성들이 이번 논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초기부터 파장을 예측할 만한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50~60대 남성이 이끄는 검증 과정에 이들처럼 감수성 예민한 '프로불편러'들이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꼭 사찰까진 아니더라도 심층 인터뷰 등 더 적극적인 검증이 가능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당이 청년이나 여성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담아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각 당의 경직된 문화와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당사자성을 살리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또다시 '땔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하나씩 고쳐야 하지 않을까.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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