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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차이나!"…메르스·사스 넘은 '혐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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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차이나!"…메르스·사스 넘은 '혐중', 왜?

    • 2020-01-30 05:55

    우한폐렴 공포→중국인 '혐오'로 분출
    온·오프라인 막론 '혐중' 정서 폭발
    싸늘한 시선에…생계 위협받기도
    "정확한 정보로 오해·선입견 없애야"

    우한 폐렴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29일 오전 서울의 한 음식점 입구에 중국인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의 공포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중국인을 혐오하는 이른바 '혐중' 정서 역시 심해지는 모양새다. 공개적으로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세운 식당이 생기는가 하면, '중국인은 내쫓아야 한다'는 발언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같은 차별적인 시선에 국내 거주 중국인이나 중국 동포(조선족)는 서글픈 감정을 느끼는면서 해코지를 당하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 다녀온 가족을 만나면 해고하겠다'는 등 일자리를 위협받는 경우까지 있다.

    ◇ 조선족 간병인 코앞서 "명절에 친척 만나지마, 어기면 해고"

    서울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중국 동포 A씨(70)는 3번째 우한폐렴 확진자가 나온 지난 25일 병원장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A씨를 부른 병원장은 대뜸 "주변에 최근 중국을 다녀온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A씨는 "조카가 다녀왔다"며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병원장은 "조카를 병원에 데려오지 마라"고 당부했다. 가능한 요구였기에 A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들은 영문 모를 꾸중이자 협박에 가까웠다. 병원장은 "조카 방문뿐만 아니라 명절에 다른 친척들도 만나지 마라"는 취지로 A씨에게 말했고, 황당해 하는 A씨를 코앞에 두고 "약속을 어기거나 속일 경우에는 잘라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결국 A씨는 병원장이 보는 자리에서 조카에게 전화해 "명절에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일을 매듭지었다.

    A씨 딸은 29일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병원장의 입장도 물론 이해는 한다"면서도 "(우한폐렴과 같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 배척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많이 힘들고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 버젓이 '중국인 출입금지' 식당까지…온·오프라인 뒤덮은 '혐중' 정서

    차별적인 시선과 혐오 표현으로 뭉쳐진 혐중 정서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쏟아지는 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인은) 민폐 민족 같다' '극혐(극도로 혐오)이다' '너무 화가 난다' 등 중국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 하루에도 수백개씩 올라오고 있다.

    게시물마다 달린 댓글도 모두 '혐중'에 공조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은 이미 서명자수가 57만명을 넘어섰다.

    오프라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인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서울 명동에는 '중국인 출입금지'를 입구에 써 붙인 식당이 곳곳에 보이고, 중국인을 태우지 않겠다며 '승차 거부'하는 택시도 적잖다.

    지난 2015년 귀화한 중국인 B씨(35)는 "한국에서 메르스가 터졌을 때 중국이 한국인 입국을 거절하거나 한국을 혐오하는 여론은 없었다"며 "중국에서 우한폐렴이 발생하자 위로나 격려보다 '오지 마라'고 찌푸리는 모습을 보니 참 슬프다"고 말했다.

    ◇ "기존 선입견·피해의식, 신종 질병 만나자 폭발"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선입견이 신종 질병이라는 새로운 정보에 편승해 혐오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새로운 질병이라는 현상이 나타났을 때 객관적인 정보를 학습하고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때문에 사람들은 학습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에 따라 손쉽게 판단하는 경항이 있따"고 분석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경제적 손익 등 최근 국제정세 속에 형성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이번 우한폐렴 사태와 맞물려 폭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당시 중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 경제에 기회와 이익이 되는 시장이었던 만큼 큰 반감은 없었다"며 "이후 사드 배치와 경제 위기,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불안한 국제정세가 펼쳐지면서 어느덧 중국으로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러스까지 침투하니 혐오로 이어지는 행동들이 나타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혐중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언론의 정확한 정보 제공과 함께 가치 중립적인 단어 사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 교수는 "처음에는 언론에서 '우한폐렴'이라고만 보도했는데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좀 더 중립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은 명칭을 쓰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과장된 공포나 선입견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도 "괜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려면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가 가능한 하루 3차례 이상 시시각각으로 의견과 정보를 종합해서 발표해줄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또 중국인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주기 위해 공론장을 구성해서 오해와 선입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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