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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봉준호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영화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14편의 상업 영화 중 봉준호 감독 영화 3편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무능한 권력과 자본주의 폐해 비판
    봉 감독, 3편의 '블랙리스트' 통해 세계적 감독으로 발돋움

    봉준호 감독 (사진=연합뉴스 제공)

     

    세계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봉준호가 곧 장르'라는 찬사를 받으며 '사회파'(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를 고발하고 개선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의 집단) 감독으로 세계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봉 감독을 세계무대에 오르게 한 발판이 된 3편의 영화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좌파' 낙인이 찍히며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의 사회 비판적 시선 때문이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와대, 국가정보원, 해외 문화원 문서에서 14편의 상업 영화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데, 이 중 3편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다. 바로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설국열차'(2013)다.

    우리 사회의 병폐나 민낯을 스릴러나 블랙코미디 등 '장르물'에 영리하게 녹여내는 건 봉 감독의 특기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3편의 영화 역시 봉 감독 특유의 재치와 사회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이에 더해 흥행까지 이루며 수많은 관객에게 사회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업 영화 15편 (표 정리=최영주 기자)

     


    영화 '살인의 추억'(2003).

     

    ◇ '살인의 추억'(2003) - "경찰을 비리 집단으로 묘사, 부정적 인식을 주입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 박두만 형사(송강호)의 대사와 눈빛으로 마무리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감독 봉준호'라는 이름을 국내외에 각인시킨 수작이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 문제를 영화라는 대중의 영역으로 끌고 와 문제의식을 자연스레 부각한다는 점이다. 특히 장르 영화가 가진 대중성과 재미까지 놓치지 않으며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킨다. 이를 통해 봉 감독은 관객에게 우리 앞에 놓인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묻는다.

    1986년부터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에서 봉 감독은 1980년대 말 사회상과 군사정권의 잔재, 폭력적인 권력의 모습을 범죄 미스터리 장르와 결합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영화에서 무능한 공권력은 경찰의 모습으로 대변된다.

    이처럼 공권력의 폭력을 영화 전면에 드러내며 '살인의 추억'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든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문건에서는 '살인의 추억'을 "공무원과 경찰을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봉 감독이 지난 10일(한국 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형님'이라 부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살인의 추억'을 본 후 봉준호 감독의 광팬이 됐다. 걸작이다. 1970년대 미국 영화가 떠올랐다.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가 공포스럽지만 유머가 있는 것처럼"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괴물'(2006)

     

    ◇ '괴물'(2006) - "반미 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해 국민의식을 좌경화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봉준호 감독의 사회파적인 시선과 특유의 상상력이 결합한 괴수 장르 영화 '괴물'을 두고 "반미 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해 국민의식을 좌경화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게 '괴물'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괴물'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영화 순위 22위에 오른 흥행작이다. 영화는 한강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가족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봉 감독이 3년간 한강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괴물'은 2000년에 발생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일상의 공간에 나타난 일상적이지 않은 '괴물'은 평범한 강두(송강호)네 가족의 평화를 깨뜨린다. 한강에 나타난 괴생명체로 인해 벌어진 혼란에 대처하는 공권력은 무능하다. 그리고 혼란 속 공포에 떠는 시민을 대하는 폭력적인 공권력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살인의 추억'처럼 정부의 무능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영화 '설국열차'(2013)

     

    ◇ '설국열차'(2013) -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겼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며 세계 영화사에 '봉준호'의 이름을 아로새긴 영화 '기생충'(2019)의 시작은 사실상 '설국열차'라 할 수 있다. '설국열차'는 봉 감독의 이른바 '자본주의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고자 한 봉 감독의 의지는 '옥자'(2017)로 이어져 '기생충'에 다다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설국열차'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 영화"라고.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봉 감독을 할리우드로 이끈 작품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7년이 지난 지구를 배경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채 끝없이 궤도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간 권력과 자본주의의 위계를 '계단'이라는 수직적 공간을 통해 은유했다면, '설국열차'에서는 수평적 공간인 '열차'를 통해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빈부격차를 고발한다.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열차는 사람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열차의 '황금 칸'(앞칸)'과 '꼬리 칸'은 그 자체로 극단으로 나뉜 빈자와 부자를 나타낸다. 꼬리 칸 사람들은 계급으로 나뉜 열차에서 사회 불평등을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설국열차'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재탄생해 오는 5월 북미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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