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테이젼' 스틸컷(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중대고비를 맞자, 방역당국은 물론 시민들도 손씻기 등 안전수칙을 비롯해 외출자제·재택근무로 감염 유행을 막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인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재난에 직면한 사회는 불안과 공포, 혼돈에 휩싸인 엄혹한 현실에서도 극적인 희망을 발견해 왔다. 이는 소설·영화와 같은 다양한 문화 매체를 통해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면서 재현돼 왔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10년 전 내놓은 영화 '컨테이젼'(2011)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는 미국, 일본, 영국 등지 대도시에서 갑자기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한다. 그녀의 남편 미치(맷 데이먼)는 그 원인을 알기도 전에 아들마저 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각국 사람들이 같은 증상으로 줄줄이 사망한다. 일상적인 접촉으로 이뤄지는 감염은 그 수가 한 명에서 수십 명으로, 또 수백·수천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경험 많은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를 감염현장으로 급파한다. 세계보건기구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 역시 최초 발병경로를 조사한다. 이 가운데 진실이 은폐됐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크럼위드(주드 로)가 촉발한 음모론의 공포는,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원인불명 감염병만큼이나 빠르게 전 세계로 번진다.
'컨테이젼'(Contagion)은 '전염', '전염병'을 뜻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전 세계에 창궐한 감염병과 이로 인해 급변하는 개개인의 삶, 사회 현상을 다룬다. 영화 '컨테이젼'의 비범한 만듦새는 여타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달리, 이러한 현상을 르포처럼 펼쳐낸다는 데 있다.
미국 국토안보국은 감염병 발병 원인으로 생물학 무기를 의심한다. 백신을 먼저 얻으려는 유명인 납치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소문난 미검증 약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앞다퉈 약국을 습격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투자분석가는 이 혼돈을 기회 삼아 주식을 사고팔 고민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어쩌면 이 영화 속 에피소드보다 더한 일들을, 지금 코로나19가 창궐한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고 있다. 분열을 조장할 목적으로 감염병에 여전히 특정 지역 이름을 넣어야 한다는 혐오 섞인 주장을 펼치는 정치 세력이 있는가 하면, 일그러진 종교적 광신은 이 감염병의 급격한 확산을 낳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 혼돈스런 상황에서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는 등 시민 안전보다 돈을 버는 데 급급한 이들도 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는 혼돈의 와중에 펼쳐지는, 감염병 창궐 현장에 급파돼 환자를 돌보고 백신 개발에 분투하는 전문가들의 희생과 용기는 자연스레 그 가치가 격상된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을 총출동시켰지만,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 영화는 감염병이 발생한 곳곳에 있는 여러 인물을 카메라에 건조하지만 촘촘하게 담아낸다. 이들 다양한 군상 가운데 하나는 '나'일 수 있다. 이 영화는 감염병 창궐 뒤 120일 동안 이어지는 혼돈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고마워요_질병관리본부' 해시태그 응원이 널리 퍼지는 현상과도 겹친다. 그렇다, 공포와 혼란에서도 희망은 늘 피어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