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일본발 여객기를 타고 도착한 승객들이 특별입국절차를 거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각에서 '혐오'에 가까운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한인회는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이탈리아 전역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상대로 귀국 전세기 수요 조사에 들어갔다. 한인회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귀국을 하고 싶어도 갈 길이 막혀 막막한 분들이 있어 일시 귀국 희망자를 집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귀국을 희망하는 인원에 따라 대한항공 본사에 요청해 운항 유무가 결정될 것"이라며 "가능한 300명은 돼야 항공사의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요금은 최대한 평상시 요금 정도가 되도록 항공사에 간곡히 요청하겠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3만 1506명이고, 사망자 수는 2503명이다. 누적 확진자 수와 누적 사망자 수 모두 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현지에서 안전과 생업에 위기를 느낀 교민들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네번째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프랑스에서도 교민과 유학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한국행 항공편을 알아보려는 문의가 항공사들과 주프랑스한국대사관 등에 폭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7일 기준 7730명에 달한다.
앞서 지난 16일 파리국제대학촌 본부는 프랑스 정부의 권고에 따라 각국관에 공문을 보내 입주 학생들의 귀국을 권고했다. 한국관 측은 학생들에게 "귀국을 권고하는 프랑스 정부의 지침과 경미한 증상의 경우 응급의료 지원을 제한하는 프랑스 의료지원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한국관의 모든 입사생의 일시귀국 또는 퇴사를 권고드린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국 러시 (사진=연합뉴스)
유럽 '엑소더스' 현상은 우리 교민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에선 유럽에 머물던 미국인들이 서둘러 귀국길에 오르면서 일부 공항에서 승객들이 공항을 빠져 나오는 데만 최대 10시간이 걸리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국인들도 유럽 탈출 행렬에 동참했다. 국가이민관리국에 따르면 지난 11일 국제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포한 이후 매일 항공편으로 중국에 입국하는 사람은 2만명이며, 이 가운데 중국인 비율이 90%에 달한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노선의 항공료가 몇 배로 치솟은 것도 중국인들의 귀국 수요가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교민들도 코로나19를 피해 귀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역유입 가능성을 제기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교민들에 대한 혐오 정서까지 형성되는 모양새다. 국내 확진자 중 해외 유입 추정 사례는 18일 기준 65명이다. 초기 중국에 국한됐던 해외 유입은 최근 들어 대부분 유럽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지난 15일 이민 카페에 올라온 글을 캡처해 올리며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가 몰려온다"는 글을 게재했다. 캡처본에는 "혼자 미국 살아서 그냥 가족 있는 한국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미국에선 보험이 있어도 워낙 진료비가 많이 나오니 두렵다. 시민권이 있어서 다시 돌아오는 건 문제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미국 시민이 미국에 있어야지 역병 생긴다고 왜 기어들어오냐", "국민 세금 야금야금 쓰겠다는 거다", "미국 살면서 미국에 세금 내는 검은 머리 외국인은 배척해야 된다" 등 차별적∙혐오적 댓글들이 잇따라 달렸다.
여기에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는 19일부터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 국내 입국자 가운데 코로나19 유증상자와 확진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한 네티즌(네이버 아이디: sk****)은 특별입국절차에 대해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속 편한 소리"라며 "결국 국민 세금 축내고 의료진만 죽어난다. 특별입국절차가 아닌 입국을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네이버 아이디: h5****)도 "입국 당시는 무증상인 감염자가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전염시킬 수도 있다. 전염병 역수입할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포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하면서도,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공포의 소용돌이에 있게 되면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배척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게 현 사태의 책임을 돌림으로써 '우리'의 결백함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공포로부터 잠시나마 피신하겠다는 방어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지금과 같은 공포 상황에서는 연대의 측면에서 '우리'가 확장되기보다는 배척과 배제, 혐오의 측면에서 '우리'의 경계가 쪼그라든다"며 "이러한 방어적 행동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일지,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흔적을 남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동포나 외국인에 대하여 일정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했던 것은 당연한 인권적 조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국익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며 "이제와 세금 납부 여부 등을 운운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이 취해온 정책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국민 보호는 중요하지만 배타적인 권리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하는 만큼 우리도 밖에서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