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거리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함께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이한형기자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당내도 논란이 일고 있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처음에는 ‘선별 지급’을 시사했다가 ‘보편 지급’으로 선회한데 대해 유승민 의원이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다.
당내에선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프레임이 편승하다 스텝이 꼬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합당, 재난지원금 ‘선별⟶보편’으로 급선회
발단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대한 논의에서 비롯됐다.
정부·여당 내에서 재난지원금이 검토되자,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비상경제대책 기자회견’에서 예산조정을 통한 100조원 마련책을 내놓으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재난지원금 관련 쟁점은 크게 ‘재원 마련책’과 ‘예산 활용방안’ 등 두 가지로 나뉘는데, 김 위원장은 예산 활용방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소기업과 자영업자, 해당 사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직접’, ‘즉시’, ‘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이 끝날 때까지 보전(補塡)해줘야 한다며 선별 지급을 시사했을 뿐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황 대표도 국민채권 40조원 발행을 촉구하는 동시에 활용 방안에 대해선 소상공인들에게 최대 1000만원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내놨다. 전 국민 대상이 아닌 피해를입은 특정 업종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 또한 선별 지급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가구당(4인 기준) 100만원’ 지급안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공방에 속도가 붙였다. 통합당은 정부안을 ‘매표(買票) 행위’라고 비판했지만, 보편 지급에 대해선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던 중 황 대표는 지난 5일 대국민 브리핑에서 ‘전(全) 국민 대상 1인당 50만원(4인 기준 2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했다. 지급 대상을 선별에서 보편으로 확대한 것을 넘어 지급액도 정부안의 2배로 늘린 셈이다.
급작스런 정책 선회의 파장을 우려한 듯 통합당은 지난 6일 질의‧응답식 참고 자료에서 “피해계층과 취약 계층에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주는 정부 방침이 정해진 현 상황에서 여러 부작용 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줘야한다는 판단”이라고 해명했다.
하위 70%에 지급하는 정부안에 맞선 차선책이라는 근거를 들었지만, 사실상 하위 계층에 대한 선별 지급이라는 ‘보수 철학’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이 지난 2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새로운보수당-한국당의 신설 합당을 추진하고 자신은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윤창원기자
◇유승민 “악성(惡性) 포퓰리즘, 선별 지급해야”…당내 “보수철학 훼손” 비판도
통합당 지도부가 재난지원금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바꾸면서 정치권은 혼돈에 빠졌다.
당장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6일 황 대표의 이같은 제안을 반색하며 가구당 100만원 지급안을 하위 70%에서 전 국민(100%) 대상으로 늘리자고 화답했다.
통합당 내에선 ‘개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유승민 의원이 이에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
유 의원은 7일 자신의 SNS(페이스북)에서 “건전보수 정당을 자임하는 통합당이 악성 포퓰리즘에 부화뇌동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황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대신 유 의원은 소득 하위 50% 계층에 ‘계단식(sliding)’ 방식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위 계층일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되는 선별 지급 방식인 셈이다.
황 대표는 유 의원의 반박에 불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대상 50만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재차 촉구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해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이해 안 된다"고 말을 아꼈다.
황 대표 등 지도부가 보편 지급으로 급선회한 것은 각 지역 출마 후보자들의 요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후보들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전면에 내걸고 유세 중인 여당 후보들에 맞설 대책이 부족해 이같은 애로 사항을 지도부에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당내에선 지도부가 재난지원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하면서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지역에 출마한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여당 후보들이 계속 100만원 주겠다고 선전을 하는데, 지도부가 입장을 정해주지 않으니까 뭐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중앙당으로 올라갔다”며 “차라리 일관성 있게 선별 지급이라도 주장하면 되는데 지금은 오락가락 한 걸 인정한 꼴”이라고 말했다.
보편 지급을 주장하고 싶지만 야당의 눈치를 보며 수위를 조절하던 여권의 프레임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지역 후보 캠프 내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수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관성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하위계층에 대한 선별 지급을 말하다가 이제 와서 바꾸는 식의 오락가락 행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 선대위 측은 여권의 ‘현금 살포성’ 전략에 맞서 불가피하게 재난지원금 방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재난지원금 대책 수립에 참여한 한 선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원래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 정도에 비례해 돈을 줘야 한다는 게 우리당의 입장”이라며 “말을 바꾼 건 미안하게 됐지만, 민주당이 선동을 하면서 우리도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