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텔레그램 'n번방' 설계자로 통하는 와치맨 전모(38·회사원)씨를 수년전 음란물 유포로 검거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덕에 전씨는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음란물 공유 블로그를 계속 운영했다.
법원마저 집행유예로 풀어주자 전씨는 텔레그램 n번방 링크 공유에 본격 뛰어들었고, '박사' 조주빈 등 n번방 운영자들이 그의 손을 거쳐 세를 키웠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와치맨 전씨를 'n번방의 거물'로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 검찰은 반려, 법원은 집유…와치맨은 수사기관 '조롱'21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와치맨 전씨는 타인의 집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해킹해 사생활을 불법 녹화하고 이를 '에이브이스눕(AVSNOOP)' 등 불법 성인사이트에 유포한 혐의로 지난 2017년 5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전씨가 회원 중에는 특히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운영진과 함께 그를 붙잡아 검찰에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300차례 넘게 IP 카메라 해킹을 시도하고, 80차례 가까이 타인의 사생활을 도촬한 혐의였다.
하지만 검찰은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꺾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당시 영장 반려 사유에 대해 "동종 범죄 전력이 없고, 증거 관계가 이미 확보돼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속 위기를 피한 전씨는 반성은커녕 불법 성인사이트 정보를 공유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음란물 유포로 경찰 조사 시 진술하는 방법'이나 '압수수색 받을 시 주의할 점' 등의 글을 올리면서 수사기관을 조롱했다.
2018년 6월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나자 전씨는 더욱 적극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러면서 블로그를 점차 키워 텔레그램 n번방과 연결시켰고, 이후 n번방 운영자와 이용자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핵심 사이트'로 성장시켰다.
사실상 수사기관의 불구속 수사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그의 범죄 행각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 풀려난 와치맨…그의 손에서 쏟아진 n번방 운영자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몇개월 지난 2018년말, 전씨는 텔레그램 세계로 무대를 옮겼다. 불법 성인사이트 홍보 블로그를 운영해 본 경험을 토대로 텔레그램에 그와 유사한 '고담 주소 채널'이라는 일종의 '허브 채널'을 만들었다.
전씨는 이 채널을 통해 불법 성인사이트 링크를 공유했다. n번방 원조 '갓갓'이 처음 등장한 곳도 전씨의 '고담 주소 채널'이다. 수시로 폭파하고 새롭게 개설되는 n번방 주소는 모두 전씨의 채널을 거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전씨는 자신의 기존 블로그를 '고담 주소 채널'과 연결하면서 더욱 세력을 키워나갔다. 블로그와 텔레그램이 하나로 합쳐지자 그의 홍보 창구는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거대 포털'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n번방 운영' 방법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포털에서 악명높은 n번방 운영자들이 수없이 쏟아졌다. 박사 조주빈을 비롯해 켈리, 체스터, 키로이, 똥집튀김 등이 대표적이다. 1세대 갓갓부터 조주빈에 이르기까지 주요 n번방 운영자들이 와치맨 전씨의 손을 거쳤다.
◇ 한번 풀어주고도…재차 솜방망이 휘두른 검찰
법망을 피해가던 전씨는 결국 지난해 9월 음란물 유포 혐의로 또다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의 구속으로 이번에는 신병만은 확보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전씨에게 고작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러다가 CBS 취재로 전씨가 n번방 사건의 주요 인물로 드러나자 검찰의 구형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검찰은 이달 9일 예정된 선고를 미루고 "죄질에 부합하는 중형이 선고되도록 하겠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이미 수년전 한차례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로 전씨가 n번방의 거물급 설계자로 성장하는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도 강력한 처벌에는 미온적이었던 셈이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 변호사는 "온라인 성착취범행에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까 형사처벌임에도 불구하고 형벌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게 된다"며 "행위 경중에 따라 단기로라도 실형을 선고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