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금고 2년을 선고한다."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9살 김민식 군을 차로 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A씨가 27일 1심 선고를 받았다.
민식 군 부모 김태양·박초희 씨는 법정 뒤에 서서 덤덤히 판결을 지켜봤다. 마스크로 가려진 그들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 보였다. 참아왔던 울음은 선고 뒤 기자들 앞에서 소회를 밝히면서 터졌다.
박초희 씨는 선고와 별개로 불거진 '민식이법' 논란과 이를 이유로 자신에게 쏟아진 세간의 비난을 해명하면서 "우리는 이제 남은 아이도 키우고 지켜야 한다"고 말한 뒤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 어린이안전 매달린 8개월…"괜히 나섰나" 후회도
'민식이 부모'로 알려진 김태양·박초희 씨가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충현 기자)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김태양·박초희 부부를 다시 충남 아산의 자택에서 만났다. 민식이를 잃은 '민식이 부모'는 지난해 12월 법안 통과 후 자제해왔던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김태양 씨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참아왔다. 그런데 오히려 오해는 자꾸만 쌓여갔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안방 베란다에는 민식이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떠난 아이의 편지와 그림 등이 걸려 있고, 가운데에는 민식이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부모들이 내놓은 것은 부엌에 놓여 있던 서류 뭉치다. 민식이가 숨진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지자체와 국회, 경찰청 등 다양한 기관들과 논의하며 진척시켜온 어린이 교통안전 관련 자료들이었다.
어린이 교통안전 공원 조성, 어린이 인기 유튜버를 활용한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등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김 씨는 "저희는 어린이 보호, 그런 것들 밖에 안 보인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한 자신들의 노력과 별개로 벌어지는 민식이법 논란에 당혹감과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민식이 생일, 민식이 기일은 계속해서 돌아올 것이고, 아이(둘째)를 재워도 민식이의 빈 자리가 항상 느껴진다. 무기징역처럼 안고 가야 하는데, 비난의 화살까지 맞고 있다"며 "아이들 지켜주자고 만들어진 법인데, 괜히 나섰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정말 민식이법 문제 있다면 수정해도 좋아"
민식이법의 논란이 된 부분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신설된 처벌 조항 때문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시속 30km 이상 달리거나 어린이 안전에 유의해 운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고,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는 조항이 새로 생겼다.
이는 일각의 반발을 불렀다. 교통사고 특성상 아무리 안전에 유의해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생기면 민식이법에 따라 중형에 처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김 씨가 이해한 법 조항의 취지는 다르다. 그는 "법을 읽고 해석하는 것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시속 3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면서 14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거나 상해를 입혔을 때만 법이 적용된다고, 상해도 그냥 단순 상해가 아니라 중대한 상해를 뜻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법 개정을 거부한다는 입장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로 이 법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해도 좋다. 수정될 부분은 수정되고, 보완될 부분은 보완돼 완벽한 법으로 바뀌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 "운전자 혼란 이해해…하지만 법을 만든 것은 국회"
김 씨는 "운전자들의 우려와 혼란을 이해한다"면서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오해에 억울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부모들이 이른바 '떼법'으로 법을 만든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법을 발의하고 수정한 곳은 국회다. 감사하게도 법이 발의되고 통과됐는데, 그 과정에서 수정되고 보완된 곳은 국회였다"면서 "이렇게 법이 만들어진 것을 저희가 만들었다고 하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운전자에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것이었고, 세부사항은 저희가 결정한 게 아니다"라며 "국회에서 논의하고 통과시킨 것이어서 그 부분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정부와 국회의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 씨는 "사실 법안의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할 일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전자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나.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규정해서 해명해줬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 오해와 해명, 사과…매일 납골당 찾는 엄마
안방 베란다에는 故 김민식 군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이충현 기자)
김 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가해 운전자가 과속했다는 주장을 했던 일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김 씨는 "제가 죄송하다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다만, 일부러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고 현장에서 가해 운전자가 40~50km/h 달린 것 같다고 얘기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가 차량의 하부로 빨려들어가서 역과(歷過)를 당했기 때문에 그 속도가 시속 23km라고 상상하지 못했다"며 "(도로교통공단본부 조사) 결과가 30km 이내라고 해서 그 부분은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김 씨는 아내 박 씨에 대한 오해와 거짓이 난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러움을 토했다.
그는 "제일 모욕적인 것이 (사고 직전) 아이 엄마가 민식이를 손짓해 부르는 바람에, 아이가 도로를 건너다 변을 당했다는 것"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 씨가 미인대회에 출전했었다는 얘기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주장 역시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씨는 매일 민식이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간다고 했다. 민식이가 그리운 순간 울음을 토해낼 공간이 그곳밖에 없어서라고 했다.
박 씨는 "저를 욕하시고 그러는 것은 괜찮은데, 아이 교육을 안 시켜서 그런 것이라는 비난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항상 아이한테 잘 살피라고, 차 조심하라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김 씨가 말을 이어 받아 "민식이법은 보복을 위한 법이 아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정부에서 풀어줬으면 좋겠고, 오해에서 벗어난 분들이 더 이상 저희를 공격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