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7년 8월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여당이 꺼낸 '한명숙 재조사' 카드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필요성을 공감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반발과 동시에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재심 사유조차 마땅치 않은데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당·정이 나서 문제 삼으면 법원에서의 최종적인 분쟁 해소라는 기존 사회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을 공식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한 전 총리는 한신건영 대표 고(故) 한만호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공개된 한씨의 옥중 비망록을 거론하며 "모든 정황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나간 사건이니 이대로 넘어가야 하나.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수 없다"며 "법무부와 검찰은 부처와 기관의 명예를, 법원은 사법부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도 한 전 총리 재조사 요구가 이어지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깊이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고 동조했다.
아울러 "(검찰의) 과거 수사 관행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국민들도 이해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구체적인 정밀 조사가 있을 필요가 있다"고 재조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추 장관이 한 전 총리 재조사에 공감하는 뜻을 보이자 검찰에서는 일단 "발언의 취지가 무엇인지 조금 더 지켜보자"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추 장관의 발언이 기존 수사와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에서 나왔는지, 검찰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원론적인 취지에서 언급된 건지 그 맥락을 향후 추가 발언이나 입장 등을 토대로 차근히 파악해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추 장관이 '정밀 조사'를 언급한 자체에는 검찰도 당혹스럽다는 분위기가 대체적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한씨의 경우 위증 판결까지 받아 재심 사유가 안 된다"며 "법률적으로 재심 사유라도 돼야 할 텐데 그럴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추 장관의 발언 직후 과거 한 전 총리 사건을 담당한 수사팀도 "언론사가 한씨의 비망록을 마치 재판과정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증거인 것처럼 제시하면서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즉각 반박했다.
특히 검찰은 민주당의 요구대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부인하며 재조사에 나서게 되면 되레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전례만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분쟁이 해소되는 방식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최종적인 게 법원을 통한 분쟁 해소다"며 "새로운 사유가 없는데도 대법원 판결에 번번이 불복하다 보면 사회의 공식적인 분쟁 해소 절차마저 흔들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같은 이유 때문에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은 법에서도, 실무에서도 지금까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일례로 반민주·반인권적 공권력 행사의 진실규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과거사정리법'에서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아무리 일제강점기·권위주의 통치로 인한 피해라도 조사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앞서 일부 언론은 한씨의 옥중 비망록 내용을 공개하면서 "한씨의 진술은 검찰 회유에 따른 거짓이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여권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 2015년에는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한 전 총리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 판결이 오판이라는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냐"며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의 사건은 현재까지 대법원에 재심 청구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