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 논란을 보고 10여 년 전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2009년 1월 검찰이 환경운동연합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 등으로 최 이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진보진영에 큰 충격을 줬다. 최 이사장은 시민운동 1세대로 이 분야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최 이사장은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돈을 받고 건설업체 대표의 민원 해결을 주선해준 혐의(알선수재)는 유죄가 인정됐다. 알선 수재도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게 2심에서 뒤집히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4대강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최 이사장을 겨냥한 탄압이라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횡령은 없던 일로 결론 났다.
위안부 문제의 상징이 된 윤미향 당선인에 대해서도 검찰이 횡령·사기 혐의 등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기부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는지를 조사하는 게 핵심이 될 전망이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이 비슷하지만 나머지 상황은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최 이사장은 검찰의 인지수사 성격이 짙었다면, 윤 당선인은 언론 보도가 시발점이 됐다는 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보수 시민단체들의 고발이 줄을 이었지만, 의혹을 제기한 것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와 언론이었다.
또 하나는 지금도 열악하다지만 시민단체의 규모가 10여 년 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정의연의 경우 연간 수억 원의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고 정부에서도 이에 못지않게 보조금을 주고 있다. 운영하는 자금의 규모도 수십억 원이다.
이는 투명성을 강화할 시스템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 이사장 사건 이후 10년이 더 지난 지금, 윤 당선인을 둘러싼 논란은 그때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있고 해명이 명료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최 이사장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이 없고 시민단체의 주먹구구식 회계 처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최 대표는 검찰 기소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환경단체 급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저임금이다. 회계 전문가를 고용하면 좋겠지만 한 달에 60만~70만 원을 주는데 회계 전문가가 오겠나. 결국 상근자들이 돌아가면서 회계 관리를 했다"고 토로했다.
최 이사장은 환경연합운동에 빌려준 돈을 받아 개인계좌로 옮기지 않고 단체 계좌에 두고 빼 쓰면서 의심을 받게 됐다. 그러나 회계자료에는 돈을 빌려주고 받은 내용이 기록돼 있어 재판부가 최 이사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윤 당선인은 50여 곳에 지급한 모금 사업비를 한곳으로만 적거나, 이월금·국고보조금 공시 누락, 기부금 수혜 인원 임의 기재 등 회계의 기본 원칙을 어긴 내용이 수두룩하다.
또 개인계좌로 받은 기부금 뿐 아니라 경기도 안성에 별도의 쉼터를 매입·매도하는 과정, 아파트를 매입한 자금 출처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회계 분야에 밝은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언론 보도된 내용만 보더라도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연 측은 여러 의혹에 대해 일부 회계 오류를 인정하면서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해명이 의혹을 쫓아가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지난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단체로 조촐하게 출발한 정의연은 30년의 세월 속에 굵직한 성과를 이루며 국민적 지지를 받은 단체로 성장했다.
정의연에는 30여 명의 이사뿐 아니라 2명의 감사도 있다. 외형적인 감시 견제 형태를 갖춘 셈이다.
감사 중 한 명은 이모 변호사, 한 명은 이모 회계사이지만 환경연합 당시보다 회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감사들은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봐달라. 회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단체 출신 인사는 "'운동' 자체가 중요하지 회계는 부차적으로 보는 과거의 관행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참여연대 출신 인사는 "참여연대는 자금 문제가 논란이 되면 시민단체로서는 끝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회계에 철저히 했다"면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라면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