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중 기침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운동 방식과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에 대해 후원금 문제 등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를 향한 혐오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이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주장부터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며 친일논란까지 등장한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이 할머니에 대한 2차 피해로 귀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차가해 점점 심각…일본군과 영혼결혼? 알고 보니 '무명씨'와 맺어준 것
1일 취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댓글 창에 올라온 이 할머니 관련 게시물과 기사를 살펴보니 할머니를 비난하는 글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진짜 위안부가 맞느냐"는 각종 인신공격성 내용부터 "대구 출신답다"는 지역 비하 발언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윤미향 의원에 대한 사퇴 여론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일부 여권 관계자와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한 이 할머니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지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4%는 '윤미향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수 성향의 84.4%, 중도 성향의 71.8%가 윤 의원 사퇴에 동의했고, 지역과 연령대를 막론하고 윤미향 사퇴론이 우세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의 경우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은 51.2%에 그쳤다. 지난 총선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구명 여론을 환기하며 표 몰이에 나섰던 열린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45.4%가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반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7.9%에 불과했다.
정부여당 지지층으로부터 전폭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방송인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에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 등을 겨냥해 "누군가 왜곡된 정보를 드렸고 그런 말을 옆에서 한 것 같다"며 '배후설'을 제기한 것도 결을 같이 한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당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나아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당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전사한 일본 군인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며 "일본인의 아내는 일본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1998년 8월 대만을 방문한 이 할머니가 일본 장교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내용의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이 할머니를 '친일'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전한 한겨레신문의 다른 기사를 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8월 27일자 '군 위안부할머니의 일본군 장교 위령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이 할머니가 일본군 장교의 인형과 '무명씨'의 인형을 준비한 뒤 둘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줬다고 나온다.
이 할머니는 수요집회에서 이런 사실을 전하면서 "생명의 은인이고 나를 첫사랑으로 생각한 일본군 장교의 위령제를 꼭 지내주고 싶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태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윤 의원의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달 29일 사퇴를 요구하는 장문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어느 토착왜구 올림'이라고 사족을 달았다. 앞서 위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무려 70%가 토착왜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을 향한 문제제기가 '친일'로 인식되는 현 상황을 반어적으로 비꼰 것이다.
◇피해자의 분열된 발언도 '치유의 과정'…"다면적·증축적 이해 필요"전문가들은 할머니의 '기억'을 문제 삼고, '의도'를 의심하는 발언들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30년 일본군 '위안부' 운동사의 과정을 되돌아볼 기회를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오키나와 전쟁의 기억과 위안소'(일본판) 책을 펴낸 위안부 연구자 홍윤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활동가들은 전시 성폭력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고도 미래를 향해 증언해오신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수없이 분열된 말들, 모순된 행동조차도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말해왔다"며 "이용수님의 증언의 역사는 단 두 번의 기자회견이 아니었고, 모든 인간이 가진 아픔은 여러 갈래인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듣기의 과정'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폭력의 역사가 알려져 온 것"이라며 "그렇게 쌓아온 무수한 세월을 이렇게 쉽게 개인의 욕망으로 치환하고 규정해 비판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표현한 조각상.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성공회대 강성현 열림교양대학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과 증언의 진정성은 '비일관성'에 있다는 말은 경구와도 같다"며 "트라우마틱(traumatic)한 상황과 대면하기 싫은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일관되지 않는 게 오히려 신빙성을 준다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할머니에 대한 2차 가해는) 우리가 피해 생존자의 삶을 너무 얄팍하게 재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 할머님의 발언을 다면적, 증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의연이 해명을 내놓는 과정에서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위안부 연구자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본인들이 서류나 공문서를 다 태워놓고서는 '물적 증거를 내놓아라'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에 대한 대항사료가 바로 할머니의 증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정의연이 할머니의 기억이 부정확한 것 같다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라며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일본과) 논리적 구성이 같은 실수를 범한 셈인데, 당황스럽더라도 숨을 고르고 찬찬히 응대를 해야 했던 문제"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발언을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 가져간 것은 부적절했다는 취지다.
한편, 대구·경북 지역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온라인상에서 할머니를 비방하는 댓글로 할머니 명예를 해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시민모임 측은 관련 제보를 취합해 악성 댓글 및 허위 사실유포자에 대해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