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한명숙(76) 전 국무총리의 과거 뇌물수수 사건 당시 검찰 수사팀으로부터 위증을 종용받았다는 내용의 진정이 접수돼 검찰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빗발치고 있는 '한명숙 재조사' 요구가 실제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재조사 움직임을 동력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불복하는 '한명숙 재심' 카드까지 거론하지만, 법리적으로 재심이 인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한 전 총리 복권과 검찰 개혁에 방점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011년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법정 증인으로 섰던 A씨가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조작 등 부조리가 있었다'는 취지로 법무부에 낸 진정을 1일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했다.
A씨는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건넨 인물로 드러난 한신건영 대표 고(故) 한만호씨의 구치소 동료 수감자다. A씨는 과거 법정에서 한 전 총리와 한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지만, 9년 만인 최근 '검찰이 위증을 교사했다'며 입장을 바꿨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을 거쳐 진정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은 조만간 진정 당사자인 A씨 등 사건 관계자들을 상대로 과거 수사 과정에 인권침해 등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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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A씨의 주장대로 검찰의 위증 교사나 인권침해가 확인되면 추후 수사로 전환될 여지가 크다. 감찰의 경우 검사징계법상 징계 가능한 시효가 3~5년이라 2011년 일어난 A씨의 진정 사건은 감찰 대상 자체가 안 된다.
인권감독관 조사에서 A씨의 주장이 명백한 허위로 드러나지 않거나 추가 사실 파악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수사로 접어들 공산이 적잖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의 연일 계속되는 압박성 발언도 외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추 장관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구체적인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첫 운을 뗀데 이어, 같은달 29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는 "문제 제기가 있다면 예외 없이 한번 조사해봐야 한다"고 확고한 입장을 내비쳤다.
A씨의 진정이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된 날에도 추 장관은 MBC에 출연해 "상당히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면 안 된다"며 "진정 사건 정도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되고 누구나 납득할 만한 조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인권감독관 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자체 종결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수사로 전환될 경우 사건은 한 전 총리 수사 검사들의 모해위증 혐의 여부를 따지는 쪽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직권남용의 공소 시효는 7년으로 이미 완성됐고, 10년인 모해위증죄는 아직 8~9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당시 수사팀은 "제기된 모든 의혹은 객관적 사실 관계와 배치되는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진정 사건 처리를 넘어 수사에 착수할 경우 한 전 총리 측에서 이를 재심 청구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련의 과정이 재심 청구로 가는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재심을 청구해도 실제 인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의 모해위증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그렇다. 과거 A씨의 증언은 '전문증언'이라 한 전 총리의 유죄 증거로 사용되지 않았고, 한씨의 비망록도 이미 재판에서 다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 탓에 최근 여권을 주축으로 불거진 '한명숙 재조사론'의 배경에는 결국 한 전 총리의 사면·복권 의중이 깔려있다고 보는 시각이 짙다. 재심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권을 통한 명예회복이라도 이루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추 장관은 A씨의 진정과 한 전 총리 재조사 움직임을 계기로 다시 한번 검찰 개혁의 고삐를 죄려는 모습이다. 추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사안을 두고 '검찰의 문제 있는 수사 방식' '잘못된 수사 관행'이라고 수차례 꼬집었다.
한 전 총리는 한씨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한씨는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었다가 위증죄로 기소돼 징역 2년의 실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