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복경씨 제공)
복경씨의 월급통장에 생활비가 쌓이고 15살 14살 남매의 학비와 용돈을 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토익 900에 학점 4.2의 '고스펙'이어서가 아니다.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아픈 아이를 혼자 돌보며 고군분투했던 '엄마'라는 스펙 덕분에 그녀는 한샘 '정규직'으로 오늘도 매장에 출근한다.
지난해 10월 마포구 한샘 본사 00층 '한부모 가족 채용 면접실' 앞. 가슴에 번호표를 단 긴장한 지원자들 사이에 김복경(44)씨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면접장에 도착했다.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자, 복경씨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준비된 의자에 앉자, 면접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 면접관이 그녀에게 지원 동기를 묻자, 복경씨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저는...쓰레기집에서 살았습니다. 내 마음이 아프면 청소나 정리 하나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제 경험을 토대로, 뭐랄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 장애 아들 외면한 남편과 이혼…우울증에 쓰레기집서 살기도평범한 결혼생활이었다. 딸이 태어나고 1년 뒤 둘째를 임신했다. 평범한 엄마로 살아가던 그녀는 둘째 아이가 26주에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그녀의 삶도 180도 바뀌었다.
아이는 뇌출혈과 폐출혈 증상으로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아픈 아이를 부둥켜 안고 몸조리도 못 하고 병원에 다녔다. 태어날때부터 신장 한 쪽이 기형이었고 뇌전증 증세도 있었다. 뇌성마비로 인한 양하지마비 증상 탓에 정기적으로 물리치료도 받아야 했다.
아이의 치료는 온전히 '엄마' 복경씨의 몫이었다.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는 아들의 장애를 '외면'했다.
"크면 괜찮아질거야. 애들은 어렸을 때 다 아프면서 커."
남편의 무관심과 "임신했을 때 몸가짐을 제대로 안 해서 아픈 애를 낳았다"는 시댁의 폭언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밀어넣었다. 함께 있는 게 더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결국 둘째 아이가 5살이 됐을 때 이혼을 택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었던 그녀는 정부 지원금으로 근근히 버티며 아이를 키웠다. 아픈 아이를 챙기느라 돌볼 겨를이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이혼 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아이를 때리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 아이들을 잠시 전남편의 본가로 보내야 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상실감이 커서 한 달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어떻게든 살아내려 했지만 정말 아무런 의지가 안 생기더라고요."
씻지도 먹지도 않던 그녀는 집 안에 쓰레기를 방치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지하 전셋방은 악취와 오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장마철에 물이 차서 가구가 썩어 악취가 진동하자 구청에 쓰레기집 신고가 들어갔다.
여러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정작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시댁에 맡긴 아이들의 상황을 전해들으면서부터였다. 7살에 시댁에 맡겼던 둘째 아들은 8살이 넘어서도 학교를 가지 못했고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아 신부전 증세가 악화됐다. 첫째는 지역돌봄센터에 하루종일 방치되어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아이들을 데려왔다. 둘째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병원 치료도 다시 시작했다.
(사진=김복경씨 제공)
◇ 정리수납전문가 강사에서 한샘 생활용품 판매 직원으로 "도움 주는 선배 되고파"구청 직원의 도움으로 정리수납 자격증 과정 수업을 들으며 멘토를 만난 그녀는 정리수납을 통해 상처도 조금씩 치유해 나갔다. 2018년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따 강의도 나갔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고민하던 중 한샘의 한부모 가정 채용 소식에 지원해 최종 합격했다.
한샘의 한부모 가족 채용은 소외계층 여성을 위한 경제적, 정서적 자립지원과 주거환경 개선 사업 일환으로 미혼모와 싱글맘을 비롯한 한부모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해부터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 각종 사회단체들의 협업을 통해 지원자를 모아 수시로 면접을 진행, 지난해 1명, 올해 2명, 총 3명의 한부모 가족 인재들이 채용돼 근무중이다.
채용 직무는 생활용품 판매ㆍ물류직과 사무직으로 한부모 가족에게 우선 채용 기회가 주어진다. 생활용품 판매ㆍ물류직은 전국 10개의 직영 매장 생활용품관에서 근무하게 되며 근무 시간은 일 8시간, 주 52시간 이내다.
잠실 매장에서 근무중인 복경씨를 비롯해 지난해 8월 첫 입사한 직원과 올해 1월 입사한 직원은 상암사옥에서 사무직으로 근무중이다.
매일 출근하고 월급받는 소소한 행복에 희열을 느낀다는 그녀는 자신의 '굳은살' 덕분에 고객 응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19 초기에 중국 동포로 보이는 손님들이 왔는데 다들 꺼려했다"며 "이분들도 어떻게 보면 소외계층인데 그들이 자신이 원해서 그런 상황이 온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나서서 응대했다"고 말했다.
회사측의 도움으로 사이버대에 진학해 공부중이라는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후배가 들어왔을 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영어공부를 해 보고 싶어요.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하려고요. 그리고 신입이 왔을 땐 이끌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