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기 기자)
국내 이용자만 3000만명 이상, 1분마다 400시간 영상 업로드.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유튜브 세계가 거대해질수록 그 '사각지대'에서는 뒤틀어진 욕망이 꿈틀댄다. '불법 사행성 사업'의 검은 그림자가 유튜브에 드리워졌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타고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유튜브와 불법의 공존 속에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CBS노컷뉴스 연속 기획 '유튜브 불법 사각지대', 16일은 두번째 순서로 '불법' 대여계좌를 버젓이 홍보하는 해외선물 투자 유튜버들을 파헤쳐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제2의 바다이야기 FX, 유튜버가 띄웠다…'홀짝' 거래와 '공생'(계속) |
◇유튜브에서 퍼진 'FX'…"초단기 거래, 사실상 빠칭코"
'2분 투자 160만원 수익', '새벽까지 꿀수익 가즈아', '합법적인 재테크, 정부 인증도 받았고 합법입니다. 사기 먹튀 전혀 없어요'
유튜브에서 'FX'를 검색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 문구들이다. 영상에는 FX투자 방법과 관련 업체, 거둬들인 수익 규모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사설 FX마진거래로 명품 핸드백이나 고급 수입차를 얻었다거나, 돈 다발을 들고 "성공했다"며 회원 가입을 서두르라는 유튜버들도 있었다.
FX(Foreign Exchange) 마진거래는 달러·유로 등 주요 외국통화의 매수 혹은 매도를 통해 차익을 내는 거래 형태다. 두 통화의 환율 변동에서 상대성을 이용해 이익을 낸다. 국내에선 2005년 선물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FX시장 참여가 허용됐다. 단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은 금융사를 통해서만 투자할 수 있고, 증거금(일종의 계약금) 1만 달러(약 1200만원)을 내야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설 FX 마진거래는 다르다. 일종의 '렌트(Rent)' 방식으로, 사설 업체가 금융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자들을 가입시켜 매수‧매도 권리를 빌려준다. 투자자들은 높은 증거금 대신 2만원만 내도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유튜버들이 홍보에 나서는 것은 이러한 사설 FX 마진거래다.
유튜브에서 번지는 사설 FX마진거래 홍보 영상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사설 업체들은 사실상 '도박 업체'로 지목되고 있다. 특이한 투자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다. 1분‧2분‧10분 투자로 해당 시간 내에 돈을 베팅해 결과에 따라 수익을 내게끔 한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분 뒤 내릴지, 오를지를 맞히면 베팅금의 두배의 수익을 주고 틀리면 그대로 잃게 된다. FX마진거래를 담당한 한 금융사 관계자는 "저런 식의 소액, 단시간 거래는 실제 거래에서 있을 수 없다"며 "사실상 빠칭코와 다를 게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 집단 고소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대건 한상준 변호사는 "1‧2‧5분 동안 유저들이 오더를 넣으면 업체가 청산을 계속 해야 하고 증권사를 통해 사고 팔아야 하는데 도저히 실거래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1년에 설립된 사설 FX마진거래 '1세대' 업체인 FX렌트는 법정에서 도박 판정을 받기도 했다. 2015년 대법원은 "FX렌트는 단시간 내에 환율 등락을 맞히는 일종의 게임 내지 도박에 불과하다. 파생상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올해 4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도박공간 개설죄로 기소된 FX렌트 조모 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336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하지만 FX렌트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뒤에도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는 여전히 우후죽순 난립한 상태다. 당국은 'FX'라는 이름을 달고 운영하는 사설 업체를 약 300여개로 추정한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사설 FX업체, 유튜버에 커미션…수수료 나눠갖고, 모집책으로 활동사설 FX마진거래 업체가 난립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 되기 때문이다. 관건은 수수료에 달려있다. 업체들은 회원이 돈을 딴 경우 12~13% 정도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1분 거래에 1만원을 투자해 맞췄다면 두배의 수익 중 수수료를 뗀 1만8700원 정도를 배당하는 셈이다.
수수료는 본사, 지점, 지사가 나눠 갖는다. 본사 밑에 수많은 지점, 그 아래 거미줄처럼 퍼진 지사가 있다. CBS가 입수한 한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 '수익구조 계약서'에 따르면 13% 수수료 약정시 본사 6%, 지사 1%, 지점 6%로 나누게 된다. 이 과정에서 FX거래를 홍보한 유튜버들은 지점 혹은 지사의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를 이용했다가 피해를 입은 A씨는 "유튜버들이 커미션을 받고 홍보하거나 지점을 차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름이 알려진) 모 유튜버는 자신이 지점을 가졌다고 SNS에 올렸고, FX 마진거래로 집을 샀다고 홍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사설 FX마진거래 업체로부터 홍보 제의를 받았다는 한 유튜버는 "(투자자) 손실의 40% 혹은 수수료의 60%, 그 이상을 준다고 했다"며 "잘 나가는 유튜버는 주 1억원 정도의 수익도 찍는다"고 말했다.
CBS는 한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를 직접 접촉해봤다. 업체 관계자는 "전혀 불법적인 소지가 없다. 매매가이드를 보내주겠다"고 전했다. 이어 SNS을 통해 온 매매가이드는 한 유튜버의 영상이었다. 해당 유튜버는 1분‧2분‧10분 투자를 직접 시현하며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영상에는 지점 연락처와 SNS 문의 아이디도 함께 달렸다.
FX렌트 1심 법원 판결 후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들은 금 마진 거래로 옮겨가는 추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거래 방식은 같다며 '꼼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설 FX거래 피해자 속출…업계 '금 마진' 거래로 이동유튜브를 통해 손 쉽게 접한 사설 FX 마진거래에 피해자들은 속출하고 있다. '합법적인 재테크', '정부 인증' 등의 홍보를 신뢰한 결과다. 피해자 모임에는 "1억3천만원 정도 잃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합법이라는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유튜브 OOO 방송을 보고 FX를 알게 되어 한달만에 7천만원 돈을 날렸다" 등의 토로가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줄을 잇는 배경에는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들이 제공하는 투자 시스템 자체의 '조작'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내부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설 업체 시스템을 만드는 전문 업자들이 있다"며 "유저가 좀 딴다 싶으면 승부값 조정을 할 수 있게끔 한다. 예를 들어 유저 5, 업체 5 이렇게 가져가는 형식도 좋다. 수수료가 그만큼 따르기 때문에 수익이 나게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서버 점검'을 이유로 갑자기 시스템을 정지시키거나, 이용자가 많이 땄을 경우 출금 정지 후 '먹튀'를 하는 경우도 속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FX렌트 1심 판결 이후 사설 FX 마진거래를 의심하는 시각이 많아지자 '금 마진 거래'로 갈아타는 추세도 포착된다. FX투자를 홍보했던 유튜버 역시 최근에는 금 마진 거래를 홍보하고 있다.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를 운영했다가 금 마진 거래를 시작한 한 업체 관계자는 "FX보다는 금 마진 거래가 안전하다"며 "금은 실물이기 때문에 불법성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거래 방식은 똑같고 대상만 환율에서 금으로 변한 형태라며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 상당수 유튜버들은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의 불법성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이 소개하는 FX거래, FX게임 등은 안전하다며 유도를 하는 양상이다. 끊임 없는 '불법'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셈이다.
경찰은 사설 FX마진거래 업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사설 FX마진거래 업체 본사. 지난 12일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봤지만 사무실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사진=이은지 기자)
◇사설 FX 업체 경찰 수사 중…당국 "유튜버 영상 단속"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사설 FX마진 거래 피해·제보, 상담 건수는 158건에 달했다. 하지만 금감원에서는 사설 FX마진 거래가 대법원 판단에 따라 '금융상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적발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원에서 금융상품으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문제 삼을 근거가 없다"며 "소비자 유의사항을 최대한 홍보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설 FX마진 거래에 대한 '도박공간 개설죄' 판례가 있는 만큼,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서는 모니터링과 수사 의뢰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감위 이정인 감시전문요원은 "FX렌트 거래를 사설로 운영하는 신고건들이 꾸준히 있어왔다"며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고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뢰를 보내서 홍보 영상 등을 차단할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튜브 홍보 영상에 대해선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만큼 단속에 일부 한계도 있는 상황이다. 이정인 요원은 "국내 사업자들의 경우 어느 정도 자율 규제적인 측면에서 이뤄지지만, 해외 사업자들은 규제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심위에서는 1차적으로 관련 도박 사이트에 대해선 차단 조치를 했다며, 향후 유튜브 영상에 대한 모니터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방심위 통신심의국 법질서보호팀 여현철 팀장은 "동시 다발적으로 하면 좋겠지만 일단 도박사이트 먼저 시정요구를 했다"며 "유튜브 영상 조치는 다음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진행 중이다. 각 지방청에 피해자 고소가 빗발치는 상태다. 가장 도마에 오른 업체는 FX렌트 이후 '2세대' FX 업체 중 가장 큰 'FXOO'이다. 이 과정에서 직접 사업에 가담한 유튜버들도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본사 뿐만 아니라 지점과 지사가 워낙 많은 상태"라며 "FXOO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설 FX 마진거래 업체와 이를 홍보하거나 모집책으로 활동한 유튜버들에게는 도박공간 개설죄 뿐만 아니라 사기죄, 방조죄, 공범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리앤파트너스 이승재 변호사는 "FX렌트 업체가 홍보와 달리 실거래 투자를 안했다면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거래를 용이하게 했다면 도박공간 개설죄 공동정범 내지는 방조죄도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