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판단의 요체가 된 '부모'의 정의. (사진=남승현 기자)
'1988년 3월 29일부터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과거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하라'
협의 이혼 32년 만에 까맣게 잊고 지내던 소방관 딸이 돌연 순직하자 유족 급여와 연금을 챙긴 친어머니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알려진 친어머니는 "접근이 막혔다"며 반격에 나섰지만, 법원은 "양육에 드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부모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주지법 남원지원은 지난 12일 순직한 소방관 딸의 유족 급여와 연금을 챙긴 A씨(65)에게 자녀 양육비 명목으로 77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양육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목적 내지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A씨는 청구인인 전 남편 B씨(63)와 협의이혼 당시 양육비에 관한 구체적으로 협의한 사실이 없다"며 "또 순직한 자녀의 순직 유족보상금 등과 순직 유족연금을 지급받게 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판단의 요체는 '부모'가 미성년자의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그 양육에 드는 비용도 원칙적으로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며 이런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어긋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해 그 양육에 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32년 만에 나타난 친어머니 A씨가 순직한 소방관 딸의 유족 급여와 연금을 챙기면서 불거졌다.
1988년 협의 이혼한 전 남편 B씨가 A씨에게 자녀 양육비 1억8950만원을 달라며 소송에 나선 것이다.
A씨는 "B씨와 이혼 이후 자녀들에 대한 접근을 막았다. 찾아가면 때리기도 했다"며 "또 자녀들에게 험단을 지속적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이들의 딸인 수도권의 한 소방서 소속 응급구조대원 C(32)씨는 지난해 1월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말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의 결과 순직이 인정된다"며 C씨 가족이 청구한 순직 유족 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C씨의 친모인 A씨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친모 A씨는 유족급여와 퇴직금 등 8천여만 원을 받았다. 사망 때까지 유족연금 182만 원의 절반인 91만 원도 매달 받게 됐다.
숨진 C씨의 언니인 D(37)씨는 "1988년 아버지와 이혼하고 떠난 친모가 수십 년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동생의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다"면서 "'죽은 동생이 지옥에 갔다'고 한 친모가 유족 급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 급여에 대한) 법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며 법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양육비였기 때문에 근본적인 유산 상속에 대한 논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에 이번 사건으로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구하라 법'을 다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하라 법'은 유산 상속 결격 사유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이 사건을 맡은 강신무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생모가 반성하고 협의해 오기를 바란 것인데 끝까지 뻔뻔하게 나오니 이런 양육비 지급 청구 소송까지 오게 됐다"며 "결정적으로 큰딸이 판사에게 보낸 진술서가 생모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재판과는 별개로 A씨가 받는 유족연금 등에는 지장이 없다"며 "'구하라 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소급입법이 금지되어 있어 A씨는 사망할 때까지 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