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노재헌 (노태우 前 대통령 장남/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올해는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의 해죠? 얼마 전 기념식에는 여야 원내대표가 함께 참석해서 오랜만에 정치권도 한마음으로 이 날을 기렸는데요. 기념식이 끝난 지 며칠 후에 한 사람의 방문 소식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였습니다. 지난해 8월 이미 5.18 민주 묘지를 찾아가서 참배를 했고, 그 해 12월에는 5월 단체를 방문했고요. 그런데 올 5월 29일에도 5.18 민주묘지를 다시 방문해서 사죄의 뜻을 밝힌 겁니다.
이런 행보는 사죄는커녕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전두환 씨 측과 대비가 되면서 더욱 더 주목을 받았고요. 또 여러 가지 궁금증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증은 더 커져갔는데요. 그런 노재헌 씨가 오늘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힙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동아시아문화센터 노재헌 원장. 지금부터 직접 만나보죠. 원장님, 어서 오십시오.
◆ 노재헌>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이게 얼마만의 방송 출연이시죠?
◆ 노재헌> 거의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 김현정> 지금 조금 떨리세요?
◆ 노재헌> 그럼요. 김현정 PD님 앞에 있는데.
◇ 김현정> 조금 경직된 모습이신데, 아예 방송 출연 자체가 처음이시니까 당연합니다. 조금만 긴장 푸시고요.
◆ 노재헌> 알겠습니다.
◇ 김현정> 광주에 첫 참배를 하러 5.18 민주묘지를 가신 게 지난해 8월이니까 거의 한 1년이 됐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1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언론 인터뷰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마는. 뭐 저희도 1년 내내 인터뷰를 섭외를 넣었는데 계속 거절하셨어요. 모든 언론 인터뷰를.
◆ 노재헌> 글쎄요. 제가 나가서 말로써 말씀을 드릴 일보다는 먼저 행동을 보여야 되겠다는 생각도 많이 있었고요. 또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고 또 제가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말들이 다 아버지하고 연관이 되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김현정>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돼야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언론 인터뷰, 언론 접촉은 꺼려왔던.
◆ 노재헌> 아마 앞으로도 언론은 많이 만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 김현정> 앞으로도 행동은 계속하실 생각이시잖아요.
◆ 노재헌>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행동은 앞으로 계속할 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이 뜻을, 이 의도를 정확히 여러분 앞에 말로 설명드려야겠다는 결심으로 오늘 어렵게 인터뷰 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2019년 8월 23일.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광주 5.18 묘역에 참배를 가게 되신 거예요? 갑자기? 갑자기는 맞습니까?
◆ 노재헌> 네, 행동으로 보면 갑자기는 맞는데요. 사실 저희 아버님이 일어나지 말아야 될 우리 광주 5.18과 관련돼서 큰 마음의 짐을 항상 가지고 계셨죠. 특히 병상에 누우신 이후부터는 사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또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고 저한테도 고스란히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 김현정> 응어리가 오랫동안 있었습니까?
◆ 노재헌> 네. 그래서 계속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생각이 복잡해지고 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서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이런 상황이 왔었어요. 그런데 사실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현충원에 가서 6.25 전사자 참배하듯이 우리 광주도 국립묘지고 민주 묘역인데 당연히 참배해야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작년 어느 날에 갑자기 그냥 마음속에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단 참배하러 가자’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내려갔어요.
◇ 김현정> 아. 그냥 불현 듯? 생각은 굉장히 오래했지만 뭘 계획 세워서 ‘내가 1년 후에, 한 달 후에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가자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드셨던 건가요?
◆ 노재헌> 네. 그래서 머리를 따르기보다는 마음을 따라서 몸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실은 아들이시잖아요. 본인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가 연좌제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으셔도, 아들이 가서 사죄하고 참배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랫동안 응어리가?
◆ 노재헌> 아버지의 아들로서 제가 아버지의 마음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생각이나 뜻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든 풀어드려야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게 가장 큰 아무래도 생각이었고. 또 제 자신도 40년 동안 우리 광주 민주화운동 같이 정말 가슴 아파 해 왔던 세대로써 제 자신의 책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히 가셨어요? 보통 참배하러 가면 좋은 뜻으로 가는 거니까 취재진에게도 알리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하고 보도도 되게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냥 조용히 다녀오시고 나서 한참 뒤에 이 사실이 알려졌어요.
◆ 노재헌> 뭐 다 그렇게 하시는 줄 알았고요. 뭐 제가 무슨 이벤트를 만들어야 될 입장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가서 참배하고 사죄드리자 하는 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우리 민주묘역에서 저뿐만이 아니고 참배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서 정말 장엄하고 엄숙한 참배의 의식을 준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감사했고요. 그런데 제가 자연인이지만 저희 아버님하고의 연관 때문에 아마 참배 소식이 알려졌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5.18 민주묘역에 딱 들어서는 순간 느낌은 어떠셨어요? 40년 동안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가게 된 날.
◆ 노재헌> 일단 너무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시는 모든 영령분들께 정말 너무 고개 숙여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한 분, 한 분 다 가서 사죄의 참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먼저 가장 먼저 들었고요. 저희 아버님의 뜻을 또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직접 오지 못하시는 그런 뜻도 담아서 사죄의 마음이 들고 또 참배를 정중하게 드리고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 김현정> ‘아버님의 마음을 담아서’라고 지금 몇 번씩 강조를 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세요. 지금 세 번이나 광주에 사죄하고 참배하러 가셨습니다. 지금 사죄라는 표현은 제가 하는 표현이 아니고 방명록에 사죄라는 단어를 쓰셨더라고요.
◆ 노재헌>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렇게 가셨는데 물론 아들이 가족을 대표해서 하는 사죄, 아버지를 대신 해서 하는 사죄도 의미가 있지만 아들이 가서 백 번 사죄하느니 당사자인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나서서 사죄를 한 마디라도 하면 될 텐데 왜 그거는 안 하지? 이런 의문들이 실은 지난 세 번 가실 동안 나왔었거든요. 어떻습니까?
◆ 노재헌> 물론 제가 백 번 가서 참배드리고 하는 것보다 저희 아버님의 한마디, 또 한 번의 행동이 더욱 더 의미가 있겠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희 아버님이 병상에 누우신 지 오래 되시고.
◇ 김현정> 얼마나 계셨죠?
◆ 노재헌> 10년이 넘었고요. 그다음에 말씀과 거동을 전혀 못 하신 지도 또 꽤 오래 됐습니다. 수년 이상의 세월이 그렇게 거의 이제 아무것도 못하시고 계신 상황이기 때문에.
◇ 김현정> 말씀도요?
◆ 노재헌> 말씀도 전혀 하지를 못하세요.
◇ 김현정> 안 되세요?
◆ 노재헌> 네. 그렇습니다.
지난 5월 29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가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사실은 5.18 민주묘지까지는 가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뭔가 말로 한 마디를 하실 수 있기를 저는 기대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십니까?
◆ 노재헌> 네, 안타까운 상황이라서.
◇ 김현정> 그러면 지금 제가 5.18 민주묘역 다녀오신 다음에 아버지께 말씀하셨을 거 아니에요.
◆ 노재헌>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때 말씀은 못 하셔도 뭔가 아들이 느낄 수 있는 건 있었습니까?
◆ 노재헌> 네, 저희가 소통을 할 때 초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도 동원해 보고 했는데 다 불가능하고. 양방향 소통은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고. 저희가 어떤 말씀을 드리면 아직도 뭐 청력 살아 있고 또 어느 정도 인지 능력을 갖고 계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희가 말씀을 드리면 어떤 반응을 하세요.
어떨 때는 표정으로 반응하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눈을 깜빡거리실 때도 있고 그래서 그런 반응을 통해서 저희가 아버님의 생각과 느낌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뭐 참배할 때마다, 또 광주 가서 여러 가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때마다 아버지께 보고를 다 드렸습니다.
◇ 김현정> ‘한마디만 하실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시겠네요.
◆ 노재헌> 네, 그렇습니다. 뭐 자식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또 다른 국민들께서 그럴 것을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어차피 현실은 받아들이고 또 그 대신에 말씀을 하지 못하신 일을 다른 방법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렇다면 아버님이 이제 전혀 말씀도 못 하는 지금 상황과 건강상태가 되시기 전에, 전에 뭔가 가족들에게 말로든 일기로든 수첩으로든 뭔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당신의 사죄의 뜻을 드러내신 적이 있어서 지금 대신 사죄를 하시는 걸까요? 어떻습니까?
◆ 노재헌> 사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금 세월이 많이 지나서 명예회복도 되고 여러 가지 좋은 뜻으로 승화가 많이 되었지만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고 주제이고 또 아버님 당신께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련이 되셨기 때문에 상당히 항상 무거운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말씀이 많으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또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제 기억에는 항상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서 마음 아파 하셨고요.
◇ 김현정> 그 진압에 관련된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 노재헌> 그렇죠.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가지 5.18을 둘러싸고 북한군이 개입됐다든지 사실이 아닌 이런 엉터리 뉴스를 통해서 국론이 분열되고 이런 일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안타까운 표현을 많이 하셨습니다.
◇ 김현정> 가족들에게요?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 노재헌> 네. 기본적으로 저희 아버님은 항상 본인이 역사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분이었고요. 그래서 5.18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셨든간에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사법부의 결정도 그대로 다 받아들이셨고.
◇ 김현정> 그리고 추징금도 다 납부하셨고. 그런 부분이 사실은 전두환 씨 가족과 비교가 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만.
◆ 노재헌> 그래서 역사에 과오가 있다면 본인이 다 안고 가겠다 하는 입장을 항상 가지고 계셨습니다.
◇ 김현정> 지금 ‘항상’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가족들에게 정말 분명하게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어요?
◆ 노재헌> 네, 그럼요.
◇ 김현정> 하셨어요?
◆ 노재헌> 그럼요.
지난해 8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 당시 남긴 방명록.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그러면 그것이 말로만 아니고 뭔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건 없습니까?
◆ 노재헌>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아들로서 제가 해야 될 일이겠죠. 아버님 관련되는 기록들 또 주변의 증언들, 이런 부분들을 다 좀 취합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그때 일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특히 우리 광주 5. 18 관련된 자료들이 나올 때마다 저도 또 관련된 분들과 공유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 자료를 지금 취합 중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증언도 그렇고요. 이미 좀 확보하신 것들이 있습니까?
◆ 노재헌> 뭐 아직은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라함은 뭐 공식적으로는 아니어도 뭔가 있긴 있군요?
◆ 노재헌> 아직은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렇습니까?
◆ 노재헌> 네.
◇ 김현정> 그런 이야기를 항상 가족들 앞에서는 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런데요. 그러면 지금 병상에 누우시기 전에 ‘내가 광주에 직접 가서 이런 나의 마음을, 나의 사과의 마음,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고 전하고 싶은 적도 있나 모르겠습니다.
◆ 노재헌> 마음은 있으셨다고 저는 생각은 드는데요. 이제 퇴임하자마자 1995년도에 특별법이 제정돼서 구속도 되시고 나오셔서 얼마 안 돼서 또 병이 쭉 2002년부터 여러 가지.
◇ 김현정> 2002년인가요? 그게.
◆ 노재헌> 네, 2002년부터 여러 가지 병을 얻으셨어요. 그래서 뭐 본인의 건강 상태나 또 그때 여러 가지 상황들이 (광주에) 내려가서 본인이 직접 행동을 하실 그런 여건이 아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고요. 2008년부터는 공식적인 행동을 하시기 어려운 상황이 되셨죠.
◇ 김현정> 이제 6일 후면 6.29 선언이 있은 지 33주년 되는 날이네요, 여러분, 잘 아시지만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전두환 정권에 요구한 8가지 항목이 그게 6.29 선언인 거고 그 안에는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을 하자’ ‘1988년 평화적 정부 이양’, ‘언론 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및 교육 자율화 실시’, ‘정당 활동 보장’, ‘사회 정화 조치’, ‘유언비어 추방’, ‘지역감정 해소’ 이런 것들이 담겨 있는 6.29 선언.
저는 이런 생각이 좀 들어요.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셨다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어떤 사죄의 마음이, 반성의 마음, 사죄의 마음. 뭔가 ‘이걸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이 있었다면 6.29선언의 한 항목으로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 노재헌> 그때가 아마 아직 5공 시절이었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광주 5.18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한다든지 그런 정신을 넣는다든지 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쉬워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6.29 선언 당시를 좀 생각을 해 보면.
◇ 김현정> 그때 대학생이셨죠?
◆ 노재헌> 네,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파란만장 했었죠. 6.29 선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6월 항쟁이었죠.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6.29 선언에 광주 5.18의 정신이 씨앗이 되어서 녹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6.29 선언 며칠,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요. 저희 아버님이 저희 가족들한테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는데 6.29 선언을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제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의 뜻을 물리적이거나 강압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지났다’ 그러시면서 ‘다시는 우리가 5.18 광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 김현정> 그 이야기를 가족회의 자리에서 하셨어요?
◆ 노재헌> 나가시면서, 그러니까 그 직전에 6.29 선언에 대해서 심경을 밝히시면서 ‘다시는 광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차라리 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하는 말씀. 약간 비장한 뜻을 밝히신 기억이 납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 후에도 지금 가족 앞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하신 것 같은데요. ‘거기에다가 내가 민주화운동에 관한 부분을 넣어야 하는데, 확실히 했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라든지 한이 담긴 이야기를 하신 적은 없나요?
◆ 노재헌> 뭐 후회나 한보다는 어떻게 보면 광주의 민주화운동, 그때 5.18 상처를 잘 치유하고 국민 화합으로 나가야 하는 것에 더 어떻게 보면 치중하셨던 것 같아요. 6.29 선언 이후에, 선거 전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광주 5.18 언급한 부분이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이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월 동아일보 보도였던 것 같은데요.
◇ 김현정> 저희 유튜브로 보시는 분들은 보고 계십니다. 동아일보 10월 21일 기사네요, 1987년 10월 21일.
◆ 노재헌> 그때 저런 언급을 하시면서.
◇ 김현정> ‘광주사태 명예회복책 강구’, 그때만 해도 사태라고 했던 그런 때니까.
◆ 노재헌> 그랬었죠. 그래서 그때 당시에 이후에 대통령되신 김대중 사면 복권을 광주 5.18과 연계를 시키시면서 사실 사면 복권은 광주와의 화합, 화해를 위한 일이었고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광주의 명예회복과 보상, 여러 가지 문제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10월이니까 6.29 지나서.
◇ 김현정> 몇 달 후네요.
◆ 노재헌> 얼마 안 돼서 표명을 하셨고.
◇ 김현정> 그럼 이 부분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것들을 6.29 선언 안에 넣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을 표현하신 거예요? 아니면 그것까지는 아닙니까?
◆ 노재헌> 직접적으로 표현하시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그냥 그 마음이 녹아 있었다고 그렇게 그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어떤 광주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사죄, 반성, 이런 것들은 수년을 통해서 가족들은 충분히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에 아버지는 못 가지만 아들인 내가 계속해서 가서 그것을 표현하겠다라는 결심이셨다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2011년에 출간된 회고록을 보면 말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에는 ‘5. 18의 원인은 유언비어’라고 기재한 부분이 있거든요.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여기셨다면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출간이 됐을까? 저는 좀 궁금하더군요.
◆ 노재헌> 그 회고록이 이미 출판이 된 부분이라 어쩔 수 없지만 만약에 다시 출판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면 개정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회고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또 아버님의 진심을 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요.
2011년만 하더라도 병세가 상당히 진행이 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회고록 시작하는 작업은 몇 년 전부터 시작을 했지만 병세가 많이 악화돼 있는 상황이라서 이 회고록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 아버님의 진심이나 의도가 제대로 저는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런 상태에서 이렇게 아주 부분적인 시각, 또 왜곡된 시각이 회고록에 그대로 나온 아쉬움이 있습니다.
◇ 김현정> 직접 쓰신 게 아니라.
◆ 노재헌> 물론 직접 메모를 쓰고. 메모를 취합해서 글을 나중에 정리했을 때는 다른 분들이 도와주셨죠.
◇ 김현정> 그 과정에서 이 부분은 조금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라고 판단하시고 개정할 생각을,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노재헌> 그렇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지난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 김현정> 알겠습니다. 지금 문자 메시지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옵니다마는 사실 여론은 전두환 씨 일가와 비교해서 바라보는 게 있어요. 그것들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 노재헌>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고 언급하기는 힘들 것 같고요. 그분들도 또 어려운 사정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고, 또 제가 보기에 좀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심정도 가지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굉장히 조심하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건.
◆ 노재헌> 아무래도 그렇죠.
◇ 김현정> 제가 볼 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는 말씀이신데요. ‘같이 좀 가자’라고 좀 하시죠. 혹시 그 자제분들하고는 모르세요? (웃음)
◆ 노재헌> 뭐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은 또 그분들 나름대로 생각과 또 행동이 있으시기 때문에 언젠가는 또 그분들이 좋은 생각을 하시고 행동을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언급하시더라고요. 이분은 누군가 하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한테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사과해야 된다고 강요하는 그분 아닙니까?
◆ 노재헌>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분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 노재헌> 사실 제가 최근에 직접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이분의 철학도 존경을 했지만 이분의 용기를 굉장히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분이고요.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다. 그 화해는 용서를 통해, 또 용서는 사과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신 거에 대해 감동을 많이 받았고요. 이것이 제가 광주의 정신 또 최근에 몇 번 방문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기념관을 들르면서 그분의 정치 철학도 이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5.18 상처를 치유하고 또 화해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명예회복, 보상 이런 것들은 필요조건이겠죠. 그렇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역사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가해자 측에 있었던 분들의 진정한 사과가 우선되고 그것을 통한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뜻도 있지만 저희 아버님의 마음을 항상 담아서 사죄와 여러 가지 행동을 하고 있고 또 이런 부분에 아버님의 말씀 한 마디가 있으면 너무 좋지만 그게 뭐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저라도 나서서 저나 저의 가족이라도 나서서 사과를 계속 드리고 또 이런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를 해야 되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100번이고 1000번이고 피해자들이 이 진정성을 믿어주시고 사죄를 받아들여주실 때까지 행동하겠다. 그 말씀이십니까?
◆ 노재헌> 네.
◇ 김현정> 5월 단체를 찾아가서 한번 만나신 적도 이야기 나누신 적도 있죠. 그분들하고 대화는 어땠습니까?
◆ 노재헌> 사실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오랜 세월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그런데 제가 또 감사했어요. 그냥 상처가 상처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분들의 노력, 희생이 있었기에 또 오늘날 민주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 또 감사한 마음을 같이 가지고 조심스럽게 찾아뵀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가장 이해가 많으실 것 같은 어머니들을 찾아뵙기로 했고요. 그래서 5월 어머니 집을 가서 정현애 이사장님, 이명자 관장님, 김형미 총장님 이런 분들을 만나뵀는데 감히 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많이 오랜 세월을 받으신 분들인데 그래도 대승적으로 저를 맞이해 주시고 또 관용과 화해의 느낌으로 말씀을 많이 해 주시고 그래서 제가 많이 감사했죠. 그런데 물론 진상규명, 또 아까 얘기한 회고록 개정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분명한 요구도 해 주셨고요. 제가 힘닿는 데까지 노력을 하겠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 김현정> 그렇게 하고 오셨군요. 지금 천 번이고 백 번이고 찾아서 사죄하겠다라는 말씀 하셨는데 실은 오해도 있을 수가 있어요. ‘아니, 뭐 혹시 다른 뜻 있는 건 아니야? 뭔가를 보이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냐?’ 여러 가지 오해들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은 상당히 조심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어떻게 내가 꺼내서 보여드려야 되는지 고민도 드실 것 같고요.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지금 100번, 1000번 하셨는데.
◆ 노재헌> 그렇습니다. 40년 동안에 차곡차곡 쌓여왔던 일이 제가 몇 번 가서 참배하고 사죄한다고 풀릴 일은 아니겠죠. 그리고 더군다나 말로써는 더욱 더 안 될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아버님의 뜻에 따라서 역사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양심에 따라서 계속 제가 해야 될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물론 마음을 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5.18 민주화 운동의 유족들께 오늘 방송에 큰 결심하고 나오셨고 다시 언제 나올지 모르시잖아요. 그런 상황이니까 방송을 통해서 마음을 담아 한 말씀하시겠습니까?
◆ 노재헌> 일단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드리고요. 정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광주 5.18로 인해서 희생되시고 또 여러 가지 아픔을 느끼셨던 모든 분들께 다시 죄송한 마음을 드리면서. 그렇지만 제가 금년도에 다시 묘역 참배하면서 느꼈던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감사한 마음. 또 광주에 계신 여러 분들, 또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이제는 5.18 광주는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게 하고 미래를 위해서 통합과 화해를 해 나가겠다’는 이 진심어린 말씀에 저도 공감을 하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5.18 단체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또 대표적인 5월 3단체도 있고 관련된 여러 분들 계속 찾아뵙고 좋은 말씀을 듣고 저도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기여를 하겠습니다.
지난 5월 29일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를 대신해 전한 조화의 모습(왼쪽),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88년 2월 25일 광주 북구 망월동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역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김옥순 여사, 그러니까 어머님 명의로 조화도 이번에 올리셨더라고요. 이한열 열사 묘소에.
◆ 노재헌> 네, 약간 사연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희 아버지께서 88년 2월에 취임하자마자 직후에 바로. 그때에는 망월동 묘지였죠. 망월동 5.18 묘역을 참배를 하고 이한열 열사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최근 보도에도 나왔지만 그때가 아마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의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거라고 생각을 하고. 두 분이 다시 내려올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제가 담아드리고 싶어서 이번에 이한열 열사 묘소에 헌화와 참배를 하였습니다.
◇ 김현정> 혹시 어머님도 지금 좀 거동이...
◆ 노재헌> 네, 많이 불편하십니다.
◇ 김현정> 어머님 건강도 안 좋으시운요.
◆ 노재헌> 네, 극진히 아버님 간호를 하다가 몇 년 전부터 병을 얻어서 거의 비슷하게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 김현정> 그렇게 된 상태군요. 또 대신 마음을 전하는 조화를 헌화하신 거군요.
◆ 노재헌> 네.
◇ 김현정> 그러니까 가족의 생각이라고 봐도 돼요? 노소영 관장도 같은 생각입니까?
◆ 노재헌>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럼 같이 광주에 가실 생각도 언젠가는?
◆ 노재헌> 언젠가는 또 있겠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아버님의 건강이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으면 정말로 함께 가서 한마디의 사죄의 말씀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은 들지만 100번이고 1000번이고 그래서 더 열심히 가서 사죄의 뜻을, 참배를 하겠다라는 이 이야기 잘 지켜주시고요.
◆ 노재헌> 네.
◇ 김현정> 오늘 여기까지 말씀 나누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노재헌> 감사합니다.
◇ 김현정>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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