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3일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마스크 수급 불균형으로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던 지난 3월3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들이 한자리에서 모인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호통을 쳤다.
"정부가 감수성 있게 느꼈는지 의심스럽다", "과연 절실한 문제로 느꼈는가", "국민의 마음으로 해법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달라"는 따끔한 주문이었다.
비공개 회의 당시 문 대통령이 '국민의 감수성'을 언급하는 순간 분위기가 더욱 숙연해졌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의 질타로 마스크 수급 문제가 당장 풀리진 않았지만, 국민의 마음은 어느정도 풀렸다. 그때까지 책임 소재 가리기에 급급했던 부처들은 한마음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25일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호소문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문제는 '국민의 감수성', 그중에서도 청년들의 감수성과 직결된 문제다.
청와대는 사안의 민감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관련 국민청원이 단 하루만에 20만명을 넘기기도 했지만, 국민 감수성을 건드리는 이슈라는 것을 핵심 참모들도 직감했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 수석이 24일, 25일 연달아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초점은 청년들의 감수성을 '공감'하는데 맞춰져 있지 않았다. 분노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팩트체크'에 집중했다.
황 수석은 인터뷰에서 공사 입장을 대변하듯 세세한 해명에 나섰다. 인국공 정규직화는 이미 수년전 노사간 합의까지 끝난 것이다, 비정규직 상당수는 공개적인 채용 절차를 거치게 된다, 연봉은 5천만원이 아니라 3800만원 선이 될 것이다 등등.
한 나라의 일자리 정책을 조율하는 수석이 TV에 나와 한 기관의 속사정을 이렇듯 상세히 해명하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팩트체크에 집중하느라 살인적인 취업난 속 청년들의 분노에 대한 황 수석의 답은 원론적이고, 짧았다.
청와대.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바로 어제(28일)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내놓은 답도 도돌이표였다. 가짜뉴스로 촉발된 오해와 정규직화의 도덕적 명분에 방점이 찍혔다. 청년들의 분노에는 한국형 뉴딜이나 혁신정책에 집중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사태가 가짜뉴스에 기댄 보수언론들의 선동이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시대적 가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려는 '생트집'에 불과하다는 해석은 정치의 영역에서 일견 타당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여당 의원들이 방패막을 들고서, 때론 죽창까지 챙겨 스스로 전방에 서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할 일은 방패막을 드는 것이 아니다. 일개 가짜뉴스에 왜 수많은 청년들이 동요하고 동조했는지, 왜 명백한 팩트체크 뒤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지, 그 감수성의 근원을 찾고 공감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도리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실물경제 부진으로 실업급여 신청이 증가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절박하기 때문이다. 상반기 10대 그룹 중 공채를 하는 곳은 4곳 뿐이다. 지난달 실업급여를 신청한 29살 이하 청년이 40% 가까이 늘었다. 취업은 커녕 알바 면접도 보기 힘든 것이 대다수 청년들의 현 주소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조차 못하고 이번 사태를 접하게 된 그들의 심경을 헤아린다면 뜨거워진 청년들의 가슴에 '가짜뉴스'라는 기름을 부을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감하며 해법을 찾겠다고 위로하는 게 먼저 아니었을까.
'이번 참에 잘 걸렸다'며 대안도 없이 정부를 있는 대로 헐뜯기 바쁜 야당의 뻔한 행태도, 보수언론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청년들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말실수를 연발하는 여당도 국민들은 다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는 이 판에 끼는게 아니라 나와서 본질을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며칠전까지 강조했던 것처럼, 직접 만나고 보듬어야 한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