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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에 스러진 박원순…'권력' 앞에 움츠린 피해자의 외침

사건/사고

    '미투'에 스러진 박원순…'권력' 앞에 움츠린 피해자의 외침

    • 2020-07-11 05:00

    실종되기 직전, '전직 비서'에 의해 성추행 혐의로 고소돼
    경찰, 박 시장 숨진 채 발견되며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종결
    文정부 들어 안희정 전 충남지사·오거돈 전 부산시장 이어 3번째
    안희정 모친상 조문행렬 같은 '추모일색', 피해자에 위축감 줄 수도
    "극단적 선택이 면죄부 될 수 없어"…피해자 '2차 가해' 움직임도
    "정치적 공작이나 음해 아닌 '피해자 말하기'로 보는 감수성 필요"
    "조직 내 모든 의전이 지자체장 향하는 구조…위력 클 수밖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사진=서울시 제공)

     

    실종 반 나절 만에 끝내 '고인'이 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박 시장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관련 고소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권의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딸의 실종신고가 이뤄진 지 약 7시간 만인 10일 오전 0시 1분쯤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 시장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경찰은 이날 박 시장의 시신을 찾은 뒤 공식 발표를 통해 "현재로서는 특별한 타살 흔적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는 박 시장이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종적을 감추기 직전 그와 함께 일했던 전직 서울시청 비서 A씨에 의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최근 "박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고소장에서 박 시장의 비서로 근무한 수 년 동안 신체접촉을 비롯한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내용에는 메신저를 이용해 퇴근 뒤에도 이어진 부적절한 메시지 수신, 개인사진 요구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숨지면서 성추행 의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수순에 들어갔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 중인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검사가 사건을 불기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급작스런 박 시장의 죽음과 연관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추행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베일에 싸이게 됐다. 박 시장은 지난 1998년 직장 내 성희롱이 엄연한 범죄임을 인식시킨 '서울대 신교수의 조교 성희롱 사건'을 맡아 승소를 이끈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평소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만큼, 성추행의 '가해자'로 피소된 심리적 부담감이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유력 여권인사가 성추문에 휩싸인 것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물론 박 시장의 혐의는 '수사를 통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불과 하루 전까지 '서울판 그린뉴딜'을 발표하고 국회를 찾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그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세부적인 사실관계를 떠나 혐의를 일정 정도는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이한형 기자/박종민 기자/연합뉴스)

     

    이들은 모두 여당 소속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큰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대권 잠룡'으로 거론된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 시장은 국내 최대 지자체인 서울의 수장으로 지난 2018년 '3선'에 성공하며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대선 가도를 착실히 밟았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큰 상황이다.

    앞서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은 그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2018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직접 피해사실을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내 '미투' 운동의 기폭제가 된 이 사건으로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돼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오 전 시장은 총선 직후인 지난 4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성추행 사실을 시인하며 전격 사퇴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오 전 시장은 지난 5월 부산지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중 최근 모친상을 당한 안 전 지사는 여권의 '조문 행렬'로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의 직함이 달린 조화를 보낸 문 대통령을 비롯해 이낙연 의원과 정세균 국무총리, 김태년 원내대표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빈소를 찾는 모습이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정부여당이 여전히 성범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모친상으로 형 집행정지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을 맞이하는 모습.(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정치권 거물들이 안 전 지사를 위로하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피해자의 고통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면서 김씨의 저서인 '김지은입니다'가 다수의 온라인 서점에서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박 시장의 황망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애도와 별개로 '추모 일색'인 분위기 역시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상당한 위축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단적 선택이 곧 '면죄부'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고, '공소권 없음'이 '혐의 없음'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신상을 특정하려고 하거나 '음모론'을 꺼내드는 '2차 가해'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가해자가 정치인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정치인들의 지지자들이 상당 세력 있어 피해자들이 훨씬 쉽게 수세에 몰리고 비난여론에 맞닥뜨리기 쉽다"며 "피해자가 용기를 낸 시도가 정치적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고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돕는 보호조치와 경각심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장이란 게 워낙 큰 공직이기 때문에, 안 전 지사 사건처럼 '남성 카르텔' 안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세력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본인의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거나 의미화되지 못한다는 감각을 줄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좀 더 기다려보고, 나왔을 때 '피해자 말하기'로 사회에 이해될 수 있는 맥락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일반 직장보다 '장(長)'의 권위가 큰 조직의 특성상 지자체가 성폭력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과거 '직장 내 성폭력'의 피해자로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변론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전체적 구조 안에서의 모든 의전이 지자체장을 향하고 있다. 그 안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있다 보니 가해자 쪽에서는 나이브해지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건 좀 아닌데요'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그런 상황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일반적인 회사에선 의전을 (특별히) 하는 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기 일을 하기 때문에 '사장님'의 위력을 느낄 일은 거의 없다"며 "(반면) 공무원 지자체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게 시장의 권한과 관련돼 있다. 지자체장이 가진 권한을 행사하거나, 그 권한에 대한 이의제기를 처리하거나 둘 중 하나로 일반적 영리회사와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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