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한 외국인 전용 클럽에 마약을 소지한 태국인은 입장할 수 없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사진=박요진 기자)
28일은 다섯 번째 순서로 국내에서 마약을 투약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늘면서 이들에게 마약을 구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내국인이 잇따르는 것은 물론 환각상태에서 벌어지는 2차 강력범죄 등 'n차 마약 투약' 실태에 대해 보도한다. [편집자 주]◇외국인 노동자에게 마약 구매·투약하는 내국인 잇따라…'n차 투약' 현실화
지난 3월 전남 목포에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태국인들과 함께 전남 일대에서 5차례 이상 '야바'를 투약한 30대 A씨가 구속됐다. 구속된 A씨는 태국인들로부터 야바 1정당 5만 원 정도에 10알 정도씩 구매했다. A씨는 일을 하며 만난 태국인들과 그들에게 소개받은 태국인들에게 마약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광주에서는 자신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20대 여성 B씨가 경찰에 자수했다. B씨는 자신의 한국인 남자 친구가 외국인 노동자들과 수 차례 마약을 투약했으며 자신에게도 여러 차례 마약 투약을 강요해 경찰에 신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B씨는 야바와 대마초 등을 함께 투약하자는 40대 남자 친구의 강요를 견디지 못해 자수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의 남자 친구와 태국인 등 7명은 전남 나주와 영암 등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됐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현황(사진=법무부 제공)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에게 마약을 판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것은 물론 또 다른 내국인에게 마약을 유통하는 이른바 'n차 투약'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 노동자 수가 증가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n차 투약'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합법 외국인 노동자만 25만 명↑…마약 사범 상당수는 '불법체류자'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인 비전문취업(E-9) 비자로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 2010년에는 19만 1239명이었지만 2018년 27만 3802명으로 8년 사이 43% 이상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노동자 신규 입국이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지난 4월 기준으로 25만 9천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마약을 투약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 상당수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점이다. 올해 들어 광주전남에서 경찰에 적발된 외국인 노동자 마약사범은 지난 6월 말 기준 37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여행비자 등으로 입국한 뒤 체류 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상황에서 마약을 투약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에 얼마나 많은 불법체류자가 머물고 있는지는 물론 외국인 노동자에게 마약을 구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사례에 대한 실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마약 전문가는 "마약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은 실제 적발 건수의 20배에서 30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1건의 사건이 수사기관에 적발됐을 경우 드러나지 않은 범행이 최소 20건이라는 분석이다.
마약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사진=대검찰청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 제공)
◇환각 상태에서 강력범죄 잇따라…태국인 과다 투약으로 숨지기도무엇보다 해외 토픽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약 투약 후 환각 상태에서 벌어지는 2차 강력범죄가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자주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대검찰청의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에서는 마약류 투약 후 환각상태에서 살인이나 강도, 절도 등 2차 강력범죄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에서는 총 60건의 마약류 투약 환각상태에서 2차 강력범죄가 발생해 65명이 적발됐다. 특히 마약 과다 투약으로 인한 사망이나 자살이 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인질극·난동도 8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9년 8월 마약 투약 혐의로 적발돼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22살 태국인이 필로폰을 과다 투약해 숨지기도 했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필로폰을 투약한 후 중·고등학생 등 승객 수십 명을 태우고 버스를 운전한 운전기사가 적발됐다. 같은 달 필로폰을 투약한 후 승용차를 운전해 강원도 터널 앞 도로를 역주행하던 중, 마주 오던 피해차량을 들이받아 상대 차량에 탑승한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환각 상태서 감금·폭행…경찰 등 수사관에 저항하기도지난 2019년 6월에는 서울 강남구 다세대주택에서 20대 한국인이 필로폰을 투약한 다음 환각상태에서 이웃집에 침입해 피해자를 가위로 협박해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12시간 동안 피해자를 감금하고, 2차례에 걸쳐 필로폰이 섞인 물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을 했고, 이를 촬영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이에 앞서 같은 해 2월에는 마약 투약 전과가 있는 40대 피의자가 인천에서 차량 운행 중 경찰로부터 마약 투약 의심자로 검문받자 승용차로 경찰 3명을 들이받고, 경찰 1명에게 상해를 가한 후 도주하기도 했다.
10여 년 동안 마약 수사를 전담했던 한 전직 경찰은 "마약을 투약하거나 구입자금 마련을 위해 강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마약을 구매하는 내국인이 늘수록 강력범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