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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단독]정부, 원전 주변 주민 '암 발병' 10년 만에 재검증 ②월성원전 앞 사는 황분희 할머니 "이제라도 진실 밝혀야" (계속) |
황분희 이주대책위 부위원장 (사진=장영식 사진작가 제공)
경주 양남면에 사는 황분희(73)씨 집과 월성원전은 불과 1.2㎞ 떨어져 있다. 황씨는 1986년부터 원전이 보이는 이 집에서 살았다.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조그만 집앞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세월이 30년이다. 원전은 1개에서 6개로 늘었지만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 늘어나면 동네가 잘 살게 된다고만 했다.
황씨 가족의 평화는 2012년 황씨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웃 주민들도 하나둘 갑상선암 환자들이 생겨났다. 3년 뒤 2015년 마을에 사는 40명의 소변을 검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길게는 수십년 동안 원전 앞에서 호흡하고 먹고 마신 40명 모두, 몸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나온 것이다.
황씨처럼 원전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씨는 이주대책위 부위원장까지 맡았다. 천막 농성은 물론, 서울과 전국 곳곳을 누비며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지 어느새 만 4년이 훌쩍 넘었다. CBS노컷뉴스는 정부가 10년 만에 원전 주민들의 건강 역학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한 황씨의 심경을 들어봤다. 황씨는 "기대 반 우려 반"이라면서도 "진실, 그대로만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전 주민들 "'괜찮다'고만 하는 정부, 못 믿겠다"얼마 간 입을 떼지 못하던 황씨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뱉은 첫 말은 "못 믿겠다"다. 황씨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라면서 "정부가 다시 '기준치'를 들고 나올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간 정부는 원전 주민들을 향해 '피폭량이 기준치 미달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를 펴 왔다. 한수원은 100밀리시버트(mSv) 이하의 방사선 피폭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빠져있는 것이 있다. '기간'이다. 해외에서는 1년, 5년에 100밀리시버트를 위험치로 관리하지만 국내 핵산업계는 기간을 언급하지 않는다.
황씨는 "과거 정부가 했던 것을 생각하면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이제라도 기준치 얘기 없이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이라도 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진실 그대로만 나오길…이주대책이 가장 중요한 보상"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조사 결과에 따른 주민보상까지 폭넓게 논의 중이다. 황씨는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때문에 암에 걸리거나 피해를 입었다면 한수원이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이미 마을은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곳이다. 이주대책이 가장 중요한 보상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70년 넘게 산 우리들은 살 만큼 살았으니 괜찮다고 하더라도 한참 크는 아이들이 있다. 방사능이 몸에 들어가면 20년, 30년 뒤에라도 병이 나타난다"며 "손자 손녀들이 갑상선암에 걸려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불안하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황씨는 또 조사 기간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주 요구만 7년째 하고 있다. 당장 조사를 시작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된다. 우리 세대가 다 죽은 다음이라면 보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는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정확한 진실이 있는 그대로만 밝혀지길 바란다. 하나라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밝히면 된다"고 했다.
황씨는 최근 월성 원전 1호기를 둘러싼 잡음에 대해서도 "중수로 4개 중 하나라도 멈춰야 방사능 수치가 덜 나올 것"이라면서 "안전성과 경제성 모두 부족해 멈추기로 결정된 것을 자꾸 재가동해야 한다고 한다. 주민들 모두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