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고유정. (사진=고상현 기자)
"하늘에 있는 제 아들이 덜 억울하게끔, 아빠로서 제가 조금은 위안을 삼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정당한 죗값을 치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2일 제주CBS 사무실에서 만난 '고유정 의붓아들 사건' 피해자 아버지 홍모(38)씨의 말이다. 오는 5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홍씨는 이렇게 답했다.
아들의 여섯 번째 생일인 지난달 27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제주 양지공원을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다는 홍씨는 "그동안 오롯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2일 아들이 억울하게 눈을 감은 이후로 가해자로 몰리는가 하면, 1‧2심 모두 '의붓아들 사건'을 무죄로 판단하면서 누가 아들을 죽였는지 2년 가까이 결론이 나지 않은 탓이다.
피해자 아버지가 아들 생전에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유가족 제공)
"피해자는 보호와 위로를 받고 국가에서 도와주기도 하는데, 저는 아이를 잃은 아버지인데도 (가해자로 몰려) 부당함을 알려야 했고, (경찰이 하지 않은) 진실 찾기를 위해 뭔가를 해야 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바뀐 게 없어요."
"가해자로 유력한 사람은 살이 찌고 있고, 피해자는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집밖에 못 나가세요. 스스로 자책감, 죄책감, 주변의 시선 때문에…. 왜 저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홍씨는 의붓아들 사건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판단 근거로 작용하거나 검찰이 '스모킹건'이라 한 부검 감정 결과를 너무 소극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제가 독세핀정(수면제 성분)을 경찰에 제출했다고 하면서 스스로 먹었을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버려요. 그런데 저는 전남편 살해에 사용된 졸피드정은 제출했지만, 독세핀정은 제 머리카락에서 검출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았거든요."
"부검 결과와 현장 사진 6장을 감정한 전문가들이 공통되게 제 몸에 눌려 숨질 가능성은 전 세계적인 사례에 비추어 극히 낮다고 했어요. 그만큼 100% 확신에 가깝게 얘기한 건데, 재판부는 0.00001%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해요."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긴급체포 된 고유정. (사진=자료사진)
홍씨는 또 항소심 재판부가 범행 전후 고유정의 수상한 행적을 주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범행 전에 고유정이 흉기를 들고 돌진하고, 아이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요. 재판부는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화해를 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애가 죽었잖아요. 결과를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건 당일 새벽 고유정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아들 친모와 외삼촌 연락처를 삭제해요. 하필이면 그날에. 또 아들이 죽고 나서 자기 엄마와 통화하며 '우리 아기도 아니잖아'라고 해요. 이런 것조차 평범하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돼요."
홍씨는 대법원 재판부에 "비록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으로서 제 아들의 사망 원인은 평생 미제로 남을 겁니다.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제 아들은 하늘에서 두 눈을 감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제까지 재판 과정을 보면 모순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에서 부디 이를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고유정. (사진=자료사진)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5일 오전 10시 10분부터 전남편‧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7)에 대한 상고심 선고 기일을 연다.
고씨는 지난해 3월 2일 새벽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엎드려 자는 의붓아들(5)의 뒤통수를 눌러 살해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25일 저녁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남편(36)을 흉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다.
1‧2심 모두 전남편 살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고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 7월 2심 직후 검찰은 의붓아들 사건에 대해 2심이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를 했고, 무기징역 형이 가볍다며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