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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의 감독이 따라간 '왜'의 결말은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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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태의 감독이 따라간 '왜'의 결말은 '가능성'이었다

    [노컷 인터뷰] 다큐 영화 '웰컴 투 X-월드' ① 감독의 이야기
    한태의 감독의 'X-월드'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남편 없이 홀로 아이 둘을 키우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 지도 12년. 그런 며느리 최미경에게 시아버지는 독립하라고 이야기한다. '독립', 그 두 글자 앞에 미경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지난날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과 걱정 때문이다.

    그런 엄마 미경에게 딸 한태의는 최대한 지금 동네에서 멀리 벗어나자고 한다. 태의는 늘 엄마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시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물론 집안 경조사를 챙기는 것까지 모두 '엄마' 몫이었다. 왜 엄마는 늘 희생만 하며 살아야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에 대한 궁금증은 곧 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가 '웰컴 투 X-월드'다. 영화는 남편 없이 12년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엄마 미경과 그런 엄마를 보며 결혼을 피하게 된 딸 태의가 독립하는 여정을 담은 가족 다큐멘터리다.

    최근 영화의 주인공 최미경씨와 연출자이자 또 다른 주인공 한태의 감독을 만나 과거의 'X-월드'와 현재의 'X-월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중 한 감독 이야기부터 풀어봤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 '왜'라는 물음이 엄마를 뒤쫓게 만들었다

    "저는 항상 엄마가 저한테 제일 궁금하고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20년 넘게 살았는데 나랑은 정반대의 성향이고, 저는 맛있는 것도 나부터 먹어야 하고 내가 항상 우선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항상 저나 오빠, 아니더라도 어른들을 먼저 챙겨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런 궁금증이 항상 있었어요."

    한 감독에게 엄마는 늘 질문을 던졌다. '결혼이 대체 엄마에게 뭘 줬길래?' '왜 엄마는 받지는 못하고 주기만 하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결혼해야 하는 거지?' 등 딸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볼 때마다 궁금증이 생겼다. 질문과 궁금증을 갖고 엄마와 엄마의 삶을 카메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단순히 미경씨만이 아니다. 감독이 품은 '왜'라는 물음 속에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이름을 지닌 여성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담겨 있다. 한 감독이 본 '여성' '엄마' '며느리'는 안 해도 되는 걸 다 해야 하는 존재였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그는 "그런 것들이 많다. 친척의 친척의 친척 결혼식도 가야 하고, 친척 오빠의 고등학교 졸업식도 가야 한다. 그런 걸 겪고 자라면서 '안 해도 되는 걸 왜 해야 하지?' 이런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 어머니, 며느리, 아내로서 감당해야 하고 당연시되고 요구되는 게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님 세대들은 그것들을 자연스러운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해야 하는 점도 되게 속상하더라. 사회적인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그게 되게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어머니들에게 2030 세대 문화를 겪게 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하지 마' '하면 안 돼' 이렇게 말로 하는 것보다 '우리 추석 때 제사 지내지 말고 방 탈출 게임을 하러 가자'는 등 다른 할 거리를 찾아주고 취미 생활을 공유해야 한다"며 "그렇게 다른 즐거움이 충분히 많다는 것을 우리 세대가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거칠고 힘든 삶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내다

    감당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삶.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삶, 며느리의 삶이란 건 녹록지 않다. 가부장제 아래 그들의 삶에는 으레 '희생'이 뒤따랐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며느리, 엄마, 아내로 존재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질 경우 관객들은 소재만으로도 주제에 짓눌릴 수 있다.

    그러나 '웰컴 투 X-월드'는 며느리이자 엄마인 최미경의 세계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단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게 아닌, 앞으로 나아가려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감독은 "시월드 이야기다 보니 주제가 무겁고 처음부터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어머님들은 무겁고 메시지가 강하면 보기 힘드시니 귀엽다, 웃기다 하며 보실 수 있게끔 영화를 만들었다"며 "어머님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 어떠한 메시지를 가득 담는 것보다 헐렁하게 시간 때우듯 볼 수 있게끔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감독이 알고 있던 엄마 최미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딸의 시선에 연출자의 시선까지 더해지며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엄마에게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가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감독의 오랜 호기심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예전의 한 감독이라면 독립해서도 시아버지를 걱정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물음표를 떠올렸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엄마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렇게 마음을 열게 된 건 엄마가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엄마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다.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 한태의 감독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X-월드'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직접 카메라 안팎을 오가고 엄마를 기록하면서 한 감독이 느낀 건 엄마의 '가능성'이다. 이는 영화의 제목인 '웰컴 투 X-월드'와도 연관이 있다.

    한 감독은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엄마의 어떤 '월드(세계)'라고 이름 붙일까 고민했다. 엄마가 머물던 시댁이라는 '과거의 월드', 엄마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X-월드'라고 붙이게 됐다. 여기에 더 풍부한 의미를 더해준 건 영화를 본 친구들과 관객들이다.

    그는 "개봉하고 친구들한테 보여주거나 관객들에게 보이니 다양하게 생각하더라.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감상을 말했는데 정말 좋았다"며 "'X'가 미지수를 의미하는데, 그 친구가 앞으로 어머니의 세계가 얼마나 더 확장될지 모르고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정해지지 않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거다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한 감독이 영화를 볼 관객, 특히 미경씨 같은 어머니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도 바로 '가능성'이다.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감당해야 하는 것,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단다. 이를 이야기하며 한 감독은 추석 일화를 꺼냈다.

    그는 "차례도 항상 우리 둘이 지냈는데, 나는 항상 그게 불만이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엄마도 올해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의미"라며 "그렇게 한 뒤 엄마가 '진짜 안 해도 되네? 괜찮네'라고 말한 게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저는 특히 어머님들이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보시면서 '이거 안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 이런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거든요. 어머니 세대가 자신의 삶과 시간을 너무 희생하셨는데, 안 해도 괜찮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어머니를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길 바라요. 많이 거절하면 좋겠어요. 저도 엄마가 거절할 때 귀엽기도 하고 기분이 좋거든요."(웃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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