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사진 오른쪽)이 4일 KBL D리그 KCC전에 출전해 공격을 노리고 있다. 이종현은 11일 현대모비스에서 오리온으로 이적했다 (사진=KBL 제공)
1년 전 오늘,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가 쏘아올린 트레이드가 KBL 무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올해 11월11일은 라건아와 이대성이 전주 KCC로 가고 리온 윌리엄스, 김국찬, 박지훈, 김세창이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은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또 올해 11월11일은 현대모비스로 임대 이적했던 박지훈이 KCC로 복귀하는 날이다.
이에 맞춰 현대모비스와 KCC가 또 하나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트레이드의 주인공은 또 있다. 바로 고양 오리온이다. 현대모비스와 오리온이 주축이 돼 진행한 협상에 KCC가 포함되면서 블록버스터급 삼각 딜이 성사됐다.
먼저 현대모비스는 오리온으로부터 정상급 포워드 최진수, 2018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지명된 강병현을 받는다. 또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오리온이 1라운드 우선 순위를 양도하기로 했다. KCC 권혁준도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는다.
오리온은 현대모비스로부터 2016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인 센터 이종현과 가드 김세창을 영입했다. KCC에서는 포워드 최현민을 데려왔다.
KCC는 현대모비스 소속이었던 포워드 김상규를 받기로 했다.
샐러리캡 계산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세 구단은 11일 최종 협상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총 7명의 선수와 드래프트 우선 지명 양도권이 포함된 초대형 트레이드다.
◇관건은 이종현의 건강
신장 203cm의 이종현은 경복고-고려대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고의 센터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고려대 시절이었던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 금메달을 차지했고 병역 혜택도 받았다.
2016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의 영광은 당연히 이종현의 몫이었다. 당시 현대모비스가 지명권 추첨에서 1순위를 뽑은 순간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는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은퇴), 함지훈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울산 현대모비스 시절 이종현의 블록슛 장면 (사진=KBL 제공)
하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이종현은 2018년부터 차례로 찾아온 아킬레스건과 무릎 부상 때문에 코트에 서있는 시간보다 재활에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2020-2021시즌을 앞두고 재활을 잘 마쳤다. 유재학 감독은 이종현의 훈련 태도를 칭찬했고 이종현 역시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함지훈과 장재석 등 동포지션 경쟁자에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번 시즌 총 5경기에서 평균 6분 출전에 그쳤다.
오리온은 이종현에게 추가적인 부상 이슈가 없고 몸 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번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오리온은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외국인 센터 제프 위디가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는 가운데 골밑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승현의 부담을 덜어줄 빅맨이 절실히 필요했다.
2011년 오리온에서 데뷔해 통산 평균 10.6득점 4.0리바운드를 올린 정상급 포워드 최진수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기로 했다. 햄스트링 부상 복귀를 앞둔 최진수는 3-4번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지만 이종현은 정통 빅맨이다.
관건은 이종현의 몸 상태 그리고 예전 기량의 회복 여부다. 만약 이종현이 1순위 지명 당시의 기대치를 보여준다면 이번 트레이드의 무게중심은 오리온에게 확 쏠린다. 이종현은 부상 전에 특히 수비 코트에서의 존재감이 엄청났던 국가대표 센터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종현이 부상 이후 기량을 검증받을만한 무대에 서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현은 지난 4일 KBL D리그 KCC와의 경기에 출전해 23분동안 코트를 밟았다. 12득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 2블록슛을 기록했다. 1군 경기와 비교할 수 없는 무대이기는 하다. 그래도 20분 이상 출전에 큰 무리가 없음을 증명했다.
오리온의 트레이드 이후 첫 경기인 14일 서울 삼성전에 관심이 쏠린다. 이 경기는 고려대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이종현과 이승현이 재회하는 첫 경기이기도 하다.
만약 출전기회를 보장받는 이종현의 기량이 기대보다 크게 떨어진다면 오리온은 이번 트레이드의 패자로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이번 트레이드가 오리온의 승부수로 불리는 이유다. 만약 이종현이 과거에 근접한 기량을 보여준다면? 오리온은 웃을 수 있다.
고양 오리온에서 현대모비스로 이적하는 정상급 포워드 최진수 (사진=KBL 제공)
◇현대모비스와 KCC의 손익 계산은?
현대모비스에서 이종현의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트레이드에 포함된 김상규, 김세창 역시 마찬가지다. 김상규는 지난해 현대모비스가 야심차게 영입한 자유계약선수(FA)였지만 이번 시즌에는 로테이션에서 밀렸다.
반면, 최진수는 즉시전력감이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한다면 3-4번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며 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또 최진수는 강력한 맨투맨 수비 능력을 갖춘 선수이기도 하다. 현대모비스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크다.
KCC 역시 즉시전력감을 얻었다. 최현민은 이번 시즌 2경기 출전에 그쳤다. 신장 201cm의 김상규는 높이와 외곽슛을 두루 갖췄고 KCC의 약점으로 평가받는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다. 송교창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이처럼 현대모비스와 KCC는 현재 로테이션에서 배제된 선수들을 내주고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데려왔다. 트레이드의 정석이다. KCC는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게 됐고 현대모비스는 최진수가 복귀하는대로 상당한 전력 강화 효과를 누릴 것이다.
이번 트레이드의 관심이 오리온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두팀과는 달리 오리온의 성패는 오로지 이종현의 건강과 현재 기량에 달렸다. 그야말로 승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