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창원기자
'주관이 뚜렷하기보다는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평'
'다소 보여주기식 진행을 원함. 법정 멘트들도 미리 재판 전에 신경 써서 준비한 느낌'
'재판에서 존재감 없음. 행정처 16년도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이하 구체적 사유)'
윤석열 총장이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에 맡겨보겠다"며 26일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을 공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이 문건을 '판사 불법 사찰'의 근거로 들며 윤 총장을 직무정지하자 그 내용을 전부 공개한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검사들의 '깨알 같은' 판사 평가가 어느 식사자리 이야깃거리도 아닌, 대검 정보라인에서 기록된 것에 대해 불쾌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추 장관이 이를 근거로 윤 총장에 대한 감찰과 직무정지에 나서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의뢰까지 한 것을 두고는 법적 요건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 기대" vs "공판에 필요한 정보 맞나"이 문건을 작성한 성상욱 전 대검 수사정보2담당관(현 고양지청 형사2부장)은 지난 25일 올린 해명글에서 "공개된 자료와 공판검사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수사 자료를 건네받았거나 비밀성 있는 개인정보를 탐색해 작성한 내용은 전혀 없다는 취지다.
앞서 추 장관이 '불법사찰'을 언급하며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를 명해놓고도 문건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법무부가 아니라 오히려 윤 총장이 직접 문건을 공개하며 대검에서 수집한 판사들의 정보와 세평이 어느 정도 수위로 보이는지 대중의 판단을 구한 상황이다.
법원 내에서는 검사가 판사들에 대해 세부적인 인상이나 스타일을 평가하고 이를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긴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있다. 성 부장검사와 윤 총장 등 대검 측은 이 문건이 오로지 공소유지를 하는데 도움을 줄 참고자료 성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용이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정 판사가 농구를 좋아하고 어느 검사와 가족관계라는 등 공소유지와 관계없는 판사의 사생활 정보들도 기재돼 있다"며 "'불법사찰'이 거창한 것이 아니다. 권력기관이 이렇게 소소한 정보들부터 모아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부적절 '동향 수집'일 수 있지만…직권남용죄 적용은 물음표이런 가운데 2017년 문무일 검찰총장이 범죄정보기획관실 소속 수사관 40여명을 원 소속 검찰청으로 복귀시키는 등 대대적으로 동향 관련 업무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수사관련 첩보 수집 외에 일반적인 동향업무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이름까지 바꿨기 때문이다.
성 부장검사는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업무범위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수사정보담당관은 각종 사건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 수집, 관리 업무를 하도록 돼 있다"며 "여기에는 수사 중인 사건 관련 정보는 물론이고 공판 중인 사건 관련 정보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 부장검사의 말대로 '공판 중인 사건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 판사의 가족관계나 취미 등은 공판과 직접 연관된 정보라기보다는 '동향'에 가깝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검이 스스로 없애기로 한 동향수집 행위를 해놓고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해당 문건 수준의 정보 취합은 기업이나 정치권 등에서도 업무상 관계자들에 대해 통상적으로 정리하는 내용에 불과해 '불법사찰'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과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이 같은 행위가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할 수준의 비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여론이 높은 상황이다. 추 장관이 전날 '불법사찰'과 관련해 윤 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대검에 수사의뢰 한 것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구성요건 충족이 안 돼 기소조차 불가능 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려면 윤 총장이 △개인적인 이익이나 특정 판사들에 불이익을 주려는 위법한 목적으로 △검찰총장의 권한을 남용해 △성 부장검사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한 구조가 돼야 한다.
그러나 윤 총장이 공개한 9장의 문건만으로는 '공판 참고용' 외에 불법적인 목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고 법무부 역시 이와 관련한 뚜렷한 증거를 아직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성 부장검사 역시 "법령상 직무범위 내의 행위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 작성자 조사도 없이 압수수색·수사의뢰…"손봐주기 감찰" 비판추 장관이 '불법사찰'이라고 규정하기까지 문건 작성자인 성 부장검사를 단 한 차례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점도 윤 총장 직무정지를 위해 과도한 프레임을 설정했다는 비판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그룹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한 이복현 대전지검 형사3부장은 전날 오후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감찰을 개시할 수 있고, 범위와 내용은 개시 당시 확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초 추 장관이 지난달 윤 총장을 감찰하겠다며 밝힌 사유에는 이번 판사 사찰 의혹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부장검사는 "'검사가 절도죄로 기소했는데 판사가 사기죄로 유죄 판결하는 식'의 걸릴 때까지 간다는 명백한 별건 불법 감찰"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식의 감찰을 하게 된다면, 출처를 모르는 투서 하나로 감찰 절차를 개시한 뒤 원래 의혹이 제기된 혐의가 아닌 다른 혐의로 감찰에 회부하는 식의 소위 '손봐주기 감찰'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한편 추 장관이 지난 24일 저녁 6시 윤 총장에 대한 징계와 직무정지를 발표한 지 2시간 후인 저녁 8시에 서울중앙지법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점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붙고 있다. 영장 청구 주체인 대검 감찰부가 윤 총장에 대해 새롭게 제기된 판사 사찰 의혹 내용을 법무부에서 미리 전달받았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은 "검찰(대검 감찰부)이 24일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같은 날 오후 8시쯤 일부는 인용하고 일부는 기각하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대검 감찰부는 그 다음날인 25일 일부 발부된 영장을 집행해 수사정보정책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청법상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인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할 수 있고 일선 부서나 검사에 대해서는 지휘할 수 없기 때문에, 추 장관이 대검 감찰부와 긴밀하게 소통했다면 위법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검찰의 한 중간간부는 "윤 총장의 불법을 단죄하겠다면서 절차적으로 너무 많은 불법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사정보정책관실 압수수색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어떻게 다룰지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