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한국경제는 전에 없던 위기에 봉착했다. 마이너스 성장률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자영업자가 폐업하는가 하면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면, 최악의 실물경제와 달리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을 얘기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극과극의 상황이 공존하는 코로나19 사태 속 2020년 한국경제를 되돌아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코스피가 이틀째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해 1월에 주식을 처음 시작했어요. 원래 예금과 적금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금리는 너무 낮고 주변에 아파트나 부동자산 등이 너무 크게 오르니까 이걸로는 답이 없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믿을만한 분이 주식 투자를 권유했고 리스크를 안더라도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헬스장을 운영 중인 트레이너 박모(34)씨의 주식 투자 경험은 올해 1년 남짓이다. 하지만 올해 국내외 증시의 풍파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1월에 국내 증시에 투자했다가 3월 최악의 장에 겁에 질려 팔았다. 주식을 접으려다가 유튜브, 책을 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향했다. 너무 무섭게 오르는 것도 겁이 났다. 50% 정도의 수익을 가지고 다시 한국시장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올해 상승장 덕분에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자신에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직업적으로는 엄청 큰 타격을 받았어요. 2.5단계 이렇게 되면서 센터는 문을 닫았는데 저는 바이오주에 투자를 하고요. 아이러니해요. 하지만 이걸로라도 경제적으로 헷지를 했다고 해야할까요. 저는 좀 일찍 투자를 시작해서 공부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 미국 주식에 투자해서 자본금을 좀 마련했지만 친구들은 생업이 어려워 투자할 여유가 없어요. 저도 그때 돈 못 벌었으면..."◇주식하는 2030 "저금리 시대, 급등한 집값 넘 볼 수 없으니 주식이라도…"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이다. 개미들은 외국인을 뒤늦게 따라가다 상투에서 주식을 산다는 속설을 비웃듯, 올해 개미들은 공포에서 사고 기다렸다가 주가가 급등할 때 차익을 실현했다. 그 중심에는 2030 개인 투자자가 있었다. 이들이 왜 코로나19로 어지러웠던 한 해, 주식을 투자할 수 밖에 없었는지 들어봤다.
대학생 김모(23)씨는 올해 주식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금융 쪽에 관심이 있어 아르바이트나 모아두었던 돈으로 주식을 하면서 주식 투자를 해 온 케이스다. 김씨는 3월 이후 기점으로 친구들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21살 때 주식을 처음 시작하면서 친구들에게도 권유 했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들은 예금이나 적금을 많이 하고 안정적 자산을 운용하려고 하니까 제 말을 그렇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주식이 많이 오르는 걸 느끼니까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식 계좌를 어떻게 개설하냐, 어디 투자를 하는지 많이 물어봤다"
이모(23)씨는 비트코인을 하다가 올해 주식을 시작했다. 이씨는 "아무래도 20대들은 주위에서 주식으로 얼마 벌었다, 누가 엄청나게 벌었다더라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많이 말한다"면서 "그러다보니 주식에 관심이 가게 됐고, 친구들 너나할 것 없이 한다고 하니까 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대학생 동기들만 보더라도 3~4명 중에 한 명은 주식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같은 20대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건 유튜브나 다양한 매체 등에서 쉽게 공부할 수 있고 설명해줘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0대에게 주식은 절박한 재테크 수단이 됐다. 직장인 송모(35.여)씨는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그걸로는 돈을 모으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금리 시대가 계속된다고 하는 얘기를 계속 듣고 있던 와중에 코로나19로 재택을 하게 되면서 시간마저 주어졌고 주식 투자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씨는 "어쨌든 내가 살아야 할 집이 있어야 하는데 월급만으로는 살 수 있는 범위를 너무 크게 벗어나 버렸다"면서 "주식으로라도 굴려보면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모(37)씨는 "우리나라에서 투자할 수 있는 게 부동산과 주식 뿐이다. 사실 부동산은 내 현재 능력으로 투자할 수가 없다. 너무 비싸고 대출도 막아놓지 않았느냐"라며 "할 수 있는 투자가 주식 밖에 없어서 내년도에도 하지 않을까 싶다. 자가(自家)는 모든 사람의 꿈이다. 자본금을 모아야 하는데 주식으로 벌려고 하고 있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
◇대규모 실탄 장전, 단체 만들어 제도 개선에 목소리 내는 개미들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규모 실탄'으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 개인 투자자의 연간 순매수 규모는 단연 사상 최대다. 연도별 개인 순매수액을 보면 2016년, 2017년도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가 2018년에는 10조 9333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에도 -5조 4839억원을 찍었다. 올해는 18일 기준으로 64조 7227억원을 기록했으니, 작년과 비교하면 약 14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규모 실탄을 들고온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한국 증시의 급반등을 주도했다. 지난달 30일 외국인 투자자가 사상 최대 규모로 한국 주식을 팔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외국인들이 코스피 시장에서 2조 437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은 2조 220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600선이 돌파한 직후라 많이 올랐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개인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날은 MSCI 신흥시장 개편이 있던 날이라, 외국인들이 기계적 조정을 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운 주식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 소방수'를 자처한 셈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0년 직접 투자자들은 과거와 다른 면이 있는데, 고공권이 아닌 바닥에서 주식을 늘렸던 유일한 사례"라면서 "올해 한국 주식 투자자들이 처음 '집단적 성공의 경험'으로 새로운 믿음을 갖는 해가 됐다"고 평가했다.
개인 투자자가 단체를 만들어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냈다는 점도 변화된 모습이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개인 투자자를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10월 개설됐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개인 주식 투자자가 700만 가까이 되는데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단체가 없으니 우리 스스로 권익을 지켜내자는 차원에서 창립했고 이후 많은 회원이 동참하고 있어 회원만 1만 8000명에 이른다"면서 "수시로 온오프로 의견을 청취 후 시위와 집회 등 행동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시장조성자 특별검사 민원 등으로 인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들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개인 신규 계좌 올해만 589만개 급증특히 올해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신규 투자자들이 많았다. 개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하는 이용하는 증권사 중 한 곳인 키움증권의 고객 계좌를 분석해보니 올해 신규로 늘어난 개인 주식계좌는 (1월부터 12월 15일 기준) 216만 2802좌개에 달했다. 지난해 개인 고객 신규 계좌가 46만 5240개였던 점을 비교해보면 약 4.7배나 폭증한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유입은 3분기에 폭발적이었다. 올해 분기별 개인 신규 주식 계좌수를 보면, 1분기는 49만 2830개였다가 2분기에는 47만 1520개로 주춤했다. 그러다 3분기에는 67만 8950개로 폭증했다가 4분기 12월 15일까지도 51만 9496개로 계속해서 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개인 투자자가 신규 계좌를 연 만큼, 매 분기 개인 투자자들이 유입된 셈이다.
올해 신규계좌를 개설한 개인고객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20대 미만이 5.7%, 20대가 23.2%, 30대가 28.9%, 40대가 25.0%, 50대가 13.4%, 60대가 3.3%, 70대 이상이 0.5%를 차지했다. 다른 연령대는 지난해 추세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는 반면 20대 미만은 2.4%에서 5.7%로 크게 늘었다.
직장인인 개인 투자자 김모(30)씨는 "과거에는 근로소득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정을 꾸려 자녀를 키우고 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그렇지가 못하다"면서 "부모 보다 못 사는 세대라고들 표현하는데, 이같은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을 때 막막하다. 이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굴려보겠다고 투자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19조 넘는 사상 최대 신용융자는 '시한 폭탄'우려스러운 점은 '빚투(빚내서 투자)'도 최대치로 솟구치고 있다는 부분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는 7거래일 연속 증가하며 전 거래일보다 764억원 증가한 19조3233억원을 기록했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 시장의 신용거래융자가 전 거래일보다 182억원 증가한 9조7799억원, 코스닥 시장 신용거래융자는 583억원 증가한 9조5435억원을 기록했다.
20대 대학생 홍모씨는 신용융자 거래 경험에 대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라고 말했다. 홍씨는 "지수가 고공행진 하면서 주식 수익률이 너무 좋아서 자신감이 넘쳐났다가 미수거래에 손을 댔다"면서 "그러다 마이너스 70~80%까지 나왔다. 소위 말해서 깡통을 찬 것인데, 소액이어서 망정이지 절대 빚을 내 투자를 해선 안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주위에 주식에 자신감 있는 친구들은 학자금 대출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10년 동안 명목상 경제가 46%나 성장했는데 주가는 10% 올랐다"면서 "성장을 40% 한 것에 비해서 주가는 버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수 3000을 가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언제든 주식은 오르고 내리는 조정이 있는 만큼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신용거래융자가 가장 위험하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모든 종목이 오르는 건 아니"라면서 "미수금을 갚지 못하면 외상으로 산 주식을 증권사가 강제로 처분해 미납금을 갚게하는 반대매매가 올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게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