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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노동법보다 느슨하다'…차별 전제한 고용허가제



경인

    [영상]'노동법보다 느슨하다'…차별 전제한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에 갇힌 코리아드림②]
    정부, 올해부터 임시 가건물 숙소 제공 사업장에 고용 허가 불허 방침
    학계·노동계·시민사회단체 "핵심을 비켜간 대책"
    "고용허가제 전제는 이주노동자의 국내 정착을 막고 노동력만 제공받는 것"
    국내 노동자보다 느슨한 노동법 적용도 논란…차별 발생 우려 높아
    폭발사고로 10명 사상…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종양 앓지만 이직 안되기도
    "외국인정책, 사회 갈등 예방·관리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최근 경기도 포천에서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던 캄보디아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노동 조건과 거주시설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현실의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한다. CBS노컷뉴스는 2차례에 걸쳐 고용주의 막강한 권한 아래 있는 이주노동자의 생활 실태를 살피고, 그들의 삶을 옥죄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죽을까봐 무섭다" 이주노동자들의 절규
    ②'노동법보다 느슨하다'…차별 전제한 고용허가제
    (끝)

    최근 열악한 주거환경과 노동 강요 등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땜질’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임시대책을 내놓기 앞서 보다 근본적인 이주노동자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정부, 올해부터 임시 가건물 숙소 제공 사업장에 고용 허가 불허 방침

    정부는 최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2021년도 외국인력 도입 운용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외국인 노동자 운용 계획의 핵심은 농·어업 종사 이주노동자의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이주노동자의 주거시설 기준을 대거 상향한다. 고용 허가 전 숙소 시설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 숙소 제공 농가의 이주노동자 취업을 불허하기로 했다.

    기존에 임시 가건물에서 지내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또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관계법과 인권교육 이수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의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바뀐 외국인 노동자 운용 계획으로 농촌 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학계·노동계·시민사회단체 "핵심을 비켜간 대책"

    국내 농촌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는 비닐하우스 숙소. 박창주 기자

     

    그러나 학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핵심 문제를 비켜 간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문제가 된 이주노동자의 숙소 문제는 고용주들이 숙소비를 급여에 비례해서 받는 점과 열악한 시설을 숙소로 제공한다는 점, 숙소비용 징수 상한액을 1인 기준으로 책정했다는 점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의 개정안은 열악한 시설을 숙소로 제공한다는 점은 해결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가지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행 규정상 이주노동자 5명이 일하는 농가에서 다세대주택 1채를 숙소로 제공하면 1명당 통상임금의 15%를 숙소비로 징수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1명당 통상임금이 2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1명당 30만원을 내는 것인데, 5명이 지낼 경우 고용주는 150만원을 숙소비로 돌려 받는다. 주거시설 개선의 사회적 비용을 이주노동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숙소 문제는 애초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등 임시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면서 많게는 월 40만원의 숙소비를 받는 데서 제기됐다.

    우춘희 이주노동자 연구가는 "실제 7~8평 규모의 빈집을 개조해 5명이 숙식케 하면서 1명당 월 20만~30만원의 숙박비를 징수한 사례가 있다"며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어디에 살게 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춰 대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전제는 이주노동자의 국내 정착을 막고 노동력만 제공받는 것

    학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대안을 내놓기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전제로 제정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관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전제된 차별'은 고용허가제가 애초 이주노동자의 국내 정착을 막고 노동력만 제공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고용허가제는 1991년 도입된 '해외투자기업연수생 제도'와 1993년에 실시된 '산업 연수생 제도'를 근간으로 2004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사양업종인 이른바 3D(Dirty·Difficult·Dangerous)업종에 대한 내국인들의 취직 기피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개발도상국 외국인 노동자로 메우자는 취지다.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하지만 임금이 낮거나 산업재해 등의 위험도가 높은 업종이 이주노동자를 선호하는 주요업종이다. 이에 따라 매년 5만5천여명의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온다.

    학계와 노동계는 우리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력만 제공받으려 할 뿐 이들의 한국사회 진입은 철저하게 막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고용허가제가 허용하는 이주노동자의 허용 체류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이다. 국적법상 5년 이상 체류할 경우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도 한국사회에서는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노동자보다 느슨한 노동법 적용도 논란…차별 발생 우려 높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관련 증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비자 발급 조건을 특정 사업장에 취직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으면서 국내법보다 느슨한 노동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주노동자는 4년 10개월간 체류하면서 최대 3번의 이직 기회를 받을 수 있는데 직전 사업장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용주의 허가없이 이직을 하려면 직전 사업장에서 임금체불이나 상해, 폐업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가능한데 적용 법조가 국내 노동법보다 느슨하다.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외국인고용법을 보면 임금체불을 월급의 30% 이상의 금액을 2개월 지급하지 않을 경우 혹은 월급의 10% 이상의 금액을 4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는 경우 등으로 규정한다.

    근로조건의 변경에 의한 이직은 애초 계약한 근로시간의 20% 이상을 감축한 기간이 1년 중 2개월을 넘었을 때만 가능하다. 고용주가 격월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근로시간을 임의로 변경했더라도 1달 이내에 바꾸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 외에도 노동조건 적용에 있어 고용주의 재량에 맡기는 조항들이 다수 포함됐다. 농촌에서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를 제공하면서 숙소비를 받거나 이직이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전제를 밑바탕으로 두고 있기에 가능하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은 "법 자체에 사람을 쓰고 버린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노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발사고로 10명 사상…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종양 앓지만 이직 안돼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이주노조가 발표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 자료집을 보면 이주노동자가 내국인보다 느슨한 노동법을 적용받는 사례를 여럿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가죽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A씨는 보일러 폭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료 2명이 숨졌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당시 공장에는 안전장비는 물론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이후 A씨는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았고, 사고 2달 뒤에는 공장에서 독성이 강한 약품을 취급하면서 목에 종양이 생겼다.

    결국 A씨는 사업장 이전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일을 잘했기 때문이다. 고용센터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은 고용주의 허가없이 이직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며 손을 놨다. 결국 A씨는 7개월 간의 요구 끝에 겨우 회사의 허가를 받았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소장(목사)은 "고용허가제가 고용주에게 전제군주나 다름없는 권한을 부여했다"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외국인정책, 사회 갈등 예방·관리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이주노동자 A씨가 폭발 사고를 겪은 국내 한 가죽공장 모습. 민주노총 이주노조 제공

     

    민주노총 이주노조와 58개 이주인권단체와 52명의 변호사 대리인단은 지난해 3월 고용허가제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신체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부도 최근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고 있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노동력'으로 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지난해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종합보고서'를 보면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 국가적·외교적 차원에서 농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 수급을 위한 기존 출입국 관리 차원 이상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내놓은 농촌 이주노동자의 숙소 문제 대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강릉원주대 김규찬 다문화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생산인구 확보를 위해 외국인을 계속 받아들여야 하지만 외국인 증가로 생기는 사회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반된 정책 목표를 추구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숙명여대 아시아 여성연구원의 학술지 '다문화사회 연구' 최신호에 기고한 '한국 복지국가와 이민자의 권리' 논문을 통해 ”한국 내 외국인의 권리는 결혼이민자, 영주권자, 전문취업자, 해외동포, 비전문 취업자 등 순으로 차등 적용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외국인정책의 초점이 이민 흐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었다면 앞으로는 사회 갈등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편집 박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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