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자립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후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자립은 적지 않은 빚으로, 또 그 빚을 갚기 위한 불법행위와 범죄로 이어지곤 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이들의 일상은 사회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와 맞물려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CBS는 위기에 놓인 '어린 채무자'들의 현재부터 구조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밀히 살펴보고 대책을 찾아보고자 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코로나 1년, 집이 사라졌다…쉼터에 머무는 청소년들 ②20살 주아의 80만 원 빚은 어떻게 1천만 원이 됐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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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아이들의 빚은 사회의 무관심과 불법을 먹고 눈덩이처럼 커진다. 어리다는 이유로 일을 하고도 제대로 된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부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는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소액으로 시작되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기도 한다. 기자가 만난 한 청소년은 수십만 원에서 시작된 자신의 빚이 어떻게 1천만 원이 넘게 됐는지 털어놨다.
대전에서 만난 주아(가명)가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주아는 청소년들이 빚을 지고, 빚이 불어나게 되는 고리를 알리고 끊어달라고 했다. 김정남 기자
주아(가명·20)의 첫 빚은 19살에 진 80만 원이었다.
친언니와 둘이 살던 원룸의 월세가 밀렸다고 했다.
자매의 생계를 책임지던 언니가 마음의 병을 안으면서 주아가 돈을 벌러 나오게 됐다. 한 가게가 19살 주아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었다. 가게 사장은 주아의 사정을 듣고는 80만 원을 가불해주겠다고 했다. 밀린 월세를 낼 수 있는 돈. 주아의 첫 빚이었다.
'친절했던' 가게 사장은 이후에는 월급을 미루곤 했다.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가불한 80만 원이 발목을 잡았다. 월세와 생활비를 내야 하는 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 가게에는 주아와 비슷한 사정의 여자아이들이 많이 일했다고 했다. "남자애들은 대든다"고 했고, "너네는 여기 아니면 받아주는 데도 없잖아"라고 사장은 종종 말했다고 했다.
주인집에서 또 연락이 왔다. 월세 4개월치가 밀렸다고 했다. 주아는 그때 처음으로 '3금융인가 4금융인가'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은행권 같은 데는 명함도 못 내밀고, 쫓겨나게 된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 빨리 해결하고 싶었어요." 월세와 생활비로 200만 원을 빌렸는데 이자가 60만 원이었다. 260만 원은 곧 300만 원을 넘어섰다.
일하는 속도보다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출을 대출로 갚았고 이자도 대출로 막았다. 정신차려보니 대출금액만 800만 원이 돼 있었다.
안정되고 더 나은 처우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중졸이라 써주는 곳이 없었다. 언니와 집을 떠난 게 중학생 때였고 고생하는 언니를 보며 진학은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더 이상 대출도 낼 수 없게 됐을 무렵, 주아는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댔다. 바로 '가개통'이었다.
170만 원짜리 휴대폰을 본인 명의로 개통해 팔고 현금 75만 원을 받았다. 기기값과 요금은 갚아나가야 할 빚이 되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다. '딜러'들은 다음에는 휴대폰 소액결제를 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게임앱을 설치하고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들어가 11만 원을 충전해주면 7만 5천 원을 현금으로 줬다. '급전'들은 빚이라는 후폭풍으로 돌아왔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377만 원의 빚이 더 늘었다.
주아는 긴급생계비지원을 알아본 적도 있다고 했다.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어서 실직 등 위기상황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원래 일했던 곳에 가서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 가게를 찾아갈 수 없었던 주아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살지 않지만 부모의 재산도 주아가 지원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됐다고 했다.
20살 나이에 지게 된 1천여만 원의 빚. 주아는 일을 하며 갚아나가고 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을 기자에게 털어놓은 것일까. 주아는 "저처럼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많으니까요"라고 했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빚을 지고, 빚이 불어나게 된다고 했다. 그 고리를 알리고 끊어달라는 게 주아의 요청이었다.
◇ 불어나는 빚 뒤에는…'준비될 수 없었던 자립'이 있었다주아의 빚이 시작된 10대. 그 이전에는 가정폭력이 있었다.
주아와 언니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견디다 견디다" 집을 나온 게 15~16살 때쯤이었다. 노트북을 중고업자에게 팔아 받은 15만 원으로 찜질방에서 지냈고, 그 돈이 떨어지자 이후에는 건물 계단에서 언니와 쪼그려 자고 그랬다.
아버지는 "잡히면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집에 잠시 들어왔던 어느 날, 밖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무서워 떨다 "차라리 이렇게 밖에서 사람 같지도 못하게 사느니 정신병원이라도 가자"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는데 경찰이었다. 매일 맞는 소리가 들리다 잠잠해지자 이웃들이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청소년쉼터로 옮겨져 지내다 자립을 하게 됐다고 했다.
가정에서는 가까스로 구제됐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생활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