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지난해 5월 '정인이 학대' 1차 신고 당시 경찰은 전문가인 의사의 소견을 직접 수사하지 않고, 몽고반점 및 아토피로 인한 상흔으로만 추정·판단해 사건을 내사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당시 몽고반점 및 아토피로 인한 상흔 판단한 근거에 대해 "의사소견 등을 수사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직접 진술을 확보하지 않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고를 건너 들은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예상된다.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실에 따르면 정인이 학대 1차 신고가 있었던 지난해 5월 경찰의 수사 기록상에는 '의사 소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5월 26일 정인이 학대와 관련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아동학대를 의심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6월 16일 내사종결했다. 근거로는 '신고자 진술 및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원) 입양 상담 기록지 등을 확인해 몽고반점 및 아토피로 인한 상흔으로 추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아토피와 상흔 추정' 근거에 대해 최근 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아보전과 현장에 동행출동해 피해아동 등을 대면확인 및 조사했고 신고인과 양부모 확인,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의 의견 및 자료분석, 아보전의 의견, 의사소견 등을 수사했으나 아동학대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내사종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판단의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의사 소견'이 수사 기록상 존재하는지 여부를 재차 묻자 "아보전이 확인해서 경찰에는 없다"라고 전했다. 수사를 했다곤 밝혔지만, 근거 기록에도 남기지 않고 직접 의사 확인도 없었던 셈이다.
의사 소견이 수사 기록상 없는 이유에 대해 경찰청은 "아보전에서 확인한 것으로 들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하지만 16개월 영아 학대 신고 조사 과정에서 전문가 진술에 대한 적극적인 확인 없이 사건을 종결한 것은 뼈 아픈 실책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한 어린이집 원장은 '정인이 몸에 멍자국이 있다'며 증거 사진도 제출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부모 측은 "오다리를 교정해주기 위해 다리 마사지를 해줬다"는 등의 취지로 주장하며 맞선 바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후 16개월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경찰이 당시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실책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동학대 수사 업무매뉴얼'에 따르면 증거자료 확인 없이 미온적으로 현장종결을 해선 안되고, 반드시 피해자를 대면해 피해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피의자의 축소 진술에 유의해야 한다.
박완수 의원은 "경찰이 아이 몸에서 멍자국이 발견됐을 최초 신고접수시 의료기관등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어야 했다"며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동학대 신고시 학대 판단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의료기관과의 협업체계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정인이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은 즉각 조사, 수사 착수가 의무화된다. 경찰이 조사나 수사 과정에서 의료기관과의 협업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탁틴내일·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전날 '정인이 사건'과 관련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대책 마련 등을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에 공개 질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전문가들이 아동학대를 의심한 사건들을 경찰이 '아동학대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근거 등을 경찰청에 공식 질의했다.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전문가인 의사 소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며 "복수의 전문 의료기관에 학대 정황을 좀더 면밀히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