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그간 침묵해 왔던 민감한 현안에 대해 비교적 가감없이 생각을 밝혔다. 평소 발언에 신중하면서 청와대 개입 논란을 최소화했던 문 대통령은 이날만큼은 소신을 드러냈는데, 정치권의 추측과는 한참 벗어난 반전의 발언들도 있었다.
발언하는 문 대통령. 연합뉴스
◇추미애-윤석열 질문 나오자 "尹은 문재인 정부의 총장", "갈등도 민주주의"대표적인 것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평가였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 구도와 징계 절차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개입을 최소화해왔다.
초반에 관련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작심한 듯 "윤 총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들이 있지만,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혹은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윤 총장을 재차 감싸면서 "이제는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국민을 염려시키는 그런 갈등은 다시는 없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있다. 이한형 기자
왜 문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추-윤 갈등을 원만히 중재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과거 같았으면 갈등이 없는 것처럼, 임기도 상관 없이 물러나게도 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며 "그런 시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즉,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중간에 개입해 억지로 상황을 푸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사법부가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것도 3권 분립이 제대로 이뤄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원리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그냥 조용한 것이 좋았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갈등 양상이 시끄러워 보이고, 불편해 보일지 모르겠다"며 "장관과 총장의 개인적 감정싸움으로 비쳐졌던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할 점도 있지만, 문민통제를 하기 위해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자신의 민주주의관을 설명했다.
◇與 맹비판한 탈원전 감사·수사에 文대통령 "정치적 목적 없을 것" 선긋기
월성 1호기(오른쪽). 연합뉴스
여권에서 민감한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감사에 대해서도 반전이 있었다. 감사원의 탈원전 관련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해 여권이 "월권적 발상"이라며 극렬히 반대하는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의심을 일축하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저는 감사원의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감사는 공익감사 청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의 수사도 당시 감사원으로부터 수사 기관으로 이첩된데 따라 수사가 이뤄진 것이지, 그 이상으로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이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감사원의 독립성, 검찰의 중립성을 위해 감사나 수사에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자부했다.
◇첫 질문에 전직 대통령 '사면' 나오자 "그냥 솔직하게 말하겠다. 어렵다"
18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화두인 만큼 다소 여지를 남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솔직하게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자단 간사가 첫 질문에서 사면 관련 입장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솔직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다"며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재판 절차가 이제 막 끝났다. 엄청난 국정농단, 권력형 비리가 사실로 확인됐고 국가적 피해가 막심했다"며 "우리 국민들이 입은 고통이나 상처도 매우 크다"고 상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하물며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재판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사면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상식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저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면 불가 입장을 여러번 못박았다.
연합뉴스
다만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마 더 깊은 고민을 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에 대해서도 대전제는 국민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여러 현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직설적인 답변은 여권에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특히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해 문 대통령이 정당성을 부여한 것에 대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그래픽=김성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