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사퇴한 가운데 2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적막이 흐르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정의당발 성추행 사태에 더불어민주당이 긴장하고 있다. 단호히 대응하기에는 민주당의 과거가 만만치 않고, 적당히 모른 척 하기에는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각종 요소를 고려해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자 당 내부에서조차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태가 불거지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당혹감이 감지되고 있다.
한때 자신들과 함께 '범진보'로 불리며, 각종 선거에서 후보 연대를 하는 등 협력 관계였던 당이 바로 정의당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사건이 오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민주당 소속 자체단체장들의 성비위 사건으로 치러진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김 전 대표가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며 이미 선을 그은 만큼 단호하게 선을 긋고 선명성을 부각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민주당의 원죄 또한 무게감이 적지 않다.
자칫 도덕성을 강조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다 중도층이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 성희롱이 맞다는 판단을 내린 상황이어서 자칫 정의당을 향한 비판이 '내로남불'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지난 25일 김 대표 사건이 공개된 지 반나절 만에, 그것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도, 정의당을 감싸지도 않은 채 거리를 둔 논평을 냈다.
최 수석대변인은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면서 동시에 "정의당은 젠더 이슈와 인권, 성평등 가치에 누구보다도 앞에서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했다.
더불어시민당 권인숙 의원. 윤창원 기자
그러자 당내에서는 "민주당도 같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한다"는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로 박 전 시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26일 SNS를 통해 "민주당은 반복되어 일어나는 권력형 성범죄의 원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반드시 해결 해내야 하는 책무를 잊으면 안 된다"며 "특히 지금은 박 전 시장 사건 관련 피해자나 관계자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는 상황에 있다. 이제는 당이 나서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지자와 국민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권정당으로서, 그리고 진보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정당으로서 구태의연함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의 태도로 걸어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 안팎에서 벌어진 성비위 사건들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정작 박 전 시장 사건 관련자에 대한 입장 정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식이 열린 지난해 7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 차량이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검찰이 박 전 시장의 피의사실을 가해자 측에 전달했다고 지목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이날 박 전 시장 사태와 관련해 "사건 당시 제가 서울시 젠더특보와의 전화를 통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고 이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저의 불찰"이라며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사과에 나섰다.
남 의원은 사과 이외에 자신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민주당 또한 이런 남 의원의 입장 발표에 대해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지역 의원은 "성비위에 대해 단호하게 나서야 함이 맞지만 이미 사건 발생 이후 상당 기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남 의원의 사과에 당 공식 입장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낙연 대표도 과거 '피해 호소 고소인' 등의 발언을 한 적이 있고, 자칫 대응을 잘못할 경우 오는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적극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