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연합뉴스
코로나19에도 불구, 언택트를 타고 지난해 우수한 실적을 거둔 IT업계에서 '성과급 박탈감' 논란이 커지고 있다. 비대면 열풍에 영업 이익이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도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일부 대기업은 전년도보다 못한 성과급을 지급하고, 넥슨은 전직원 연봉을 800만 원씩 올려주면서 직원 처우가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성과급이 예년보다 더 쪼그라든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떠나고 싶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면서 인력 유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 이어 SKT 노조도 성과급 재고촉구…다른 기업으로도 확산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서 발생한 성과급 논란이 이번에는 또 다른 주력 업체 SK텔레콤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의 논란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봉 반납을 선언했는데도 오히려 논란이 그룹 전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앞서 SK하이닉스에서는 지난해 5조 원 이상 영업이익을 달성하고도 연봉의 20% 수준으로 성과급이 책정되자 직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노동조합은 최근 전환희 위원장 명의로 박정호 CEO에게 보낸 서한에서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성과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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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SK텔레콤은 지난해 매출액 18조 6247억 원, 영업이익 1조 3493억 원을 기록했다고 전날 공시했다.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5.0%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21.8% 늘었다.
그런데도 주주 참여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된 주식으로 예측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성과급이 작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노조는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는 "최근 몇 년간 구성원들은 매해 조금씩 줄어가는 성과급에도 회사 실적 악화로 인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성과급을 많이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큰 폭으로 줄어버린 성과급에 대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조는 "현재의 납득할 수 없는 금액 수준이 아니라, 힘든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구성원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이 제시돼야 하고 경영진이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면서 성과급 규모에 대해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도 중요하지만 성과급을 책정하는 평가 지표에는 주가나 연초 목표도 봐야 하고 성과 지표도 보는 것"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은 다른 기업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는 OPI(초과이익분배금) 지급률이 '연봉의 37%'로 결정됐다. 1조 5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역대 최대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OPI(초과이익분배금) 지급률이 연봉의 37% 수준으로 결정됐다. 이는 스마트폰 담당 무선사업부(50%)나 같은 소비자가전(CE)부문에 속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50%)보다도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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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한 지붕 아래 있었던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 간에는 서로의 성과급 잠정안(LG화학 300~400%, LG에너지솔루션 245%)을 비교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삼성 계열사는 게시판에 올라온 대표이사의 신년사에 모 직원이 "직원 처우를 높여달라"는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넥슨, 직책과 상관없이 전사원 연봉 800만 원 인상…삼성 채용공고까지 뜨자 '귀한몸' 개발자 술렁지난해 국내 게임 업체 최초로 연매출 3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는 넥슨은 올해 전직원 연봉을 800만 원씩 인상하기로 했다. 신입 사원 초임 연봉도 개발 직군 5천만 원, 비개발 직군 4500만 원으로 대폭 상향한다. 초봉은 기존에 개발 직군 4200만 원, 비개발 직군 3800만 원 수준이었다.
넥슨 측은 전사 연봉을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직원들에 대한 보상 차원의 성과급도 지난해보다 높은 수준으로 별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넥슨 전경. 연합뉴스
넥슨은 성과에 따른 보상 지급도 기조를 바꾸기로 했다. 직책·연차·직군과 무관하게 큰 성과를 낸 조직과 개인에게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해 동기 부여를 극대화하겠다고 예고했다. "우수 인재들이 높은 성취감으로 일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는 최근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내면서 더 뒤숭숭해지는 분위기다. 올해는 D램 슈퍼사이클이 거론될 정도로 업황 전망이 밝기 때문에 대규모 인력을 뽑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이러하자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내부에서는 혹시라도 인력 유출이 일어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실제 삼성 채용 공고가 뜨자 SK하이닉스 등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이직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열풍으로 개발자가 더 귀해진 만큼 IT 기업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기는 OPI 지급률이 14% 수준이지만 큰 잡음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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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매주 여는 '직원과의 대화'에서 OPI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직원들에게 '비교적 투명한 정보'를 줬기 때문이라 분석이 삼성 안팎에서 나온다.
◇SK하이닉스, 성과급 산정시 영업이익과 연동하기로 합의…SKT 박정호 "기업가치 제고 노력하자"
SK하이닉스는 최근 불거진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 지난 4일 오후 이천 본사에서 중앙노사협의회를 열고 PS(초과이익 분배금) 제도 개선과 함께 우리사주를 구성원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PS 산정의 기준 지표를 기존 EVA(경제적 부가가치)에서 영업이익과 연동하는 것으로 변경해 내주에 구성원과 소통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승인을 전제로 우리사주를 발행해 구성원들에게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기로 했다. 구체적 방안은 추후 결정키로 했으나 대략 기본급의 200%에 해당되는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주를 구성원들에게 부여함으로써 회사의 미래성장을 함께 도모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SK텔레콤 박정호 CEO도 노조의 성과급 재고 촉구에 이날 늦은 오후 화답했다. 박 CEO는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경영으로 제고한 사회적 가치가 잘 반영이 안 되고 있다"며 "회사의 성장과 발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더욱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그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ESG 경영 가속화와 재무적 성과 확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본인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구성원과 직접 대화하는 소통의 자리를 계속 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