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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열전]'개미 하나 안 놓치는' 경계가 계속돼야 할까

국방/외교

    [안보열전]'개미 하나 안 놓치는' 경계가 계속돼야 할까

    '지휘책임' 물어 줄줄이 보직해임…그런데도 반복되는 이유는
    저출산과 병력 감축으로 기존 경계 방식은 이제 불가능
    "아예 경계작전 개념 바꿔 민통선 북쪽에서 상황 끝내자"
    "모든 침투 완벽히 막을 순 없다…어느 정도 리스크 감수해야"
    실현 위해선 해결할 과제도…일부는 지금도 시급한 사항
    매번 '희생양' 찾기보단 실천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 찾아야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해안철책이 늘어서 있는 강원도 고성 일대의 바닷가. 사진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유선희 기자

     

    지난 16일 강원도 고성에서 벌어진 북한 남성 귀순 사건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분위기입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오전 4시 20분 해당 남성이 처음으로 CCTV에 식별되기 전에도 군 감시장비에 여러 차례 포착됐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군 당국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작전에 과오가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만큼, 해당 지역을 책임지는 육군 22보병사단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지난 수십년 동안 숱한 경계작전 실패 사례가 있었는데, 언론에 대서특필될 때마다 지휘관들이 옷을 벗는 일이 반복돼 왔습니다. 2021년에도 계속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군에서는 '물샐 틈 없이 개미 한 마리도 못 지나가게' 지켜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우리 국민들과 군의 '경계'에 대한 개념에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저출산으로 인한 군 병력 감소는 이미 우리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3개 여단이 100km 철책 경계…산악지대와 바다 만나 경계엔 '최악의 난이도'

    그래픽=김성기 기자

     

    사실 22사단은 고성 일대를 경계하면서 엄청난 부담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책임구역 자체가 지상 30km, 해상 70km 정도로 다른 사단들보다 훨씬 넓습니다. 군사분계선(MDL)이 240km 정도니까, 쉽게 말해 휴전선의 약 40%에 해당하는 거리를 사단 하나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죠.

    보통 GOP를 경계하는 1개 보병사단은 2개 보병여단과 이를 보조하는 1개 예비여단으로 구성되는데, 22사단은 3개 여단이 다른 부대의 보조 없이 각자 책임구역을 맡으면서 근무합니다. 그만큼 피로도가 높으며 이 때문에 사건사고가 빈발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곳은 군사분계선 이남 우리나라 동쪽 가장 끝과 함께 이어지는 바닷가를 책임지는 56보병여단의 작전구역으로, 금강산 자락과 동해가 만나는 지형이 아주 험준하다고 합니다.

    특히 바다에는 물골이 생기는데다 폐벙커 등 인공물까지 있어 경계병력의 근무지 또는 감시장비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닷가라는 특성상 한 곳에서 경계해야 할 지역도 내륙 산악지대보다 넓다고 하고요.

    이 때문에 교육훈련보다 경계작전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전현직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과거엔 중요 포인트마다 경계병력들이 나가서 근무를 서고 순찰을 돌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고 있으며 병력도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 감축 계획에 따라 22사단은 근처의 23보병사단까지 흡수통합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책임구역은 더 늘어납니다.

    사람이 줄어든 대신 광망과 카메라 등의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자리를 대신하게 됐지만 오래되거나 결함이 있어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해 11월 이른바 '월책 귀순' 사건 당시 북한 남성이 GOP 철책을 넘는 모습 자체는 감시장비에 식별되고 있었지만, 자동으로 경보가 울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일 등이 이를 보여줍니다.

    ◇현실로 다가온 저출산과 병력 감축…보초에 의존하는 북한도 경계망 뚫려

    지난해 7월 '탈북민 월북 사건' 당시 인천 강화군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시 일대. 이한형 기자

     

    병력 감축은 22사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군의 모든 부대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광망과 카메라 등이 완벽하진 않고 여기에 100% 의존해서도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것들을 활용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난해 5월 충남 태안의 밀입국 사건, 같은 해 7월 인천 강화군의 '탈북민 월북 사건', 11월 강원 고성의 '월책 귀순' 사건은 경계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병력들을 대거 투입해 '물 샐 틈도 없이 지켜야' 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과학화경계시스템보다는 사람이 직접 서는 경계근무에 의존하는 북한군에게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19일 '탈북민 월북 사건' 당시 해당 남성의 월북을 닷새나 지난 24일에야 눈치챘고, 곧장 개성시를 봉쇄했으며 25일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합니다. 경계망에 구멍이 난 셈입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인천 강화군과 맞닿아 있는 개성시 일대는 북한 기준으로도 최전방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한 비상방역체제를 특히 강조하던 북한이 최전방 경계근무를 어떻게 할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죠. 그만큼 경계작전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개미 한 마리조차 못 지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

    이런 상황에선 경계작전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옵니다. 개미 한 마리조차 못 지나가게 한다는 말은 구호로는 좋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며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민간인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상황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22사단 GOP 대대장, 27보병사단장과 특전사령관을 지냈던 전인범 예비역 중장은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며 240km 남짓 군사분계선이 있는데 개미 한 마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면 병력이 200만명은 있어야 한다"며 "최전방이라도 정면이 워낙 넓어서 그야말로 경계만 서는데, 적의 흔적을 찾는 것이 주 목적이며 침투하는 과정에서 잡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경계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요.

    그는 "적이 침투하는 과정에서 잡으려면 5~10미터마다 경계근무를 서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고, 대신 침투를 어렵게 하며 그 흔적을 발견해 민통선 북쪽에서 격멸하고 과학화 장비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이다"며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모든 침투를 곧바로 찾아서 그 자리에서 막을 수 없는 환경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신 빠르게 대응작전을 펼쳐 민통선 북쪽에서 막으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지금도 민통선 안쪽은 일부 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성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도 "적국과 국경을 맞대는 나라들도 경계망에 과학화장비를 기본으로 설치하되, 실내에는 기동타격대를 상시 대기시켜 알람이 울리자마자 바로 출동해 조치를 취하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개념 바꾸는 것이 쉬운 일 아니지만…현행 시스템 개선은 시급

    강원도 철원의 육군 6보병사단에서 상황병이 CCTV 모니터를 보며 철책선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민통선 안에는 극소수지만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두 번째로, 현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며 근무자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개선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봐야 할 화면이 10~20개 이상으로 너무 많다거나, CCTV의 동작감시 시스템이 너무 민감해 새나 동물 등이 포착돼도 경보가 울린다고 전현직 군인들은 토로합니다.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화면을 보면서 이상한 상황을 적재적소에 잡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의 눈은 자신이 집중하는 곳 이외의 다른 곳을 잘 보지 못하게 마련이어서, 뭔가 이상한 물체를 봤다고 하더라도 카메라를 조작해 확인해 보는 동안 다른 화면은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경계의 개념을 바꾸든 그렇지 않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인 만큼 아주 시급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는 첨단 감시 시스템에도 생기게 마련인 사각지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사항입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월책 귀순' 사건 직후 국회에서 "비무장지대 안은 서부와 동부가 작전 환경 차이가 굉장히 많이 있다"며 "동부전선은 감시장비를 운용하더라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지형 기복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운용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다 찍지 못하는 곳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긴데요, 특히 22사단은 이런 상황이 심각한 부대입니다.

    전인범 장군은 "모니터 감시 인원을 늘리고 적외선·열상 감시장비와 인공지능을 통한 식별 기술 등을 빨리 적용해야 한다"면서 "사실 뾰족한 방법은 없으며 얼마의 노력과 예산을 투입할지는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려면 인식의 변화와 기존 경계병력들의 재편성이 필요하겠죠.

    ◇이번엔 '현장 과오' 있다지만…매번 반복돼 온 '지휘책임'도 변화 필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

     

    우리 군은 그 동안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지휘책임을 물어 지휘관들을 처벌하는 식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상명하복으로 돌아가는 군대에선 지휘책임이 중요하기에 그런다지만, 어쩌면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희생양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지휘관이 마땅히 해야 할 교육이나 방침 강조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선의 말단 병사들이 새벽에 모니터를 보다가 잠깐 졸았다든지, 소초장이 성실히 순찰을 돌았지만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것들까지 모두 '근무태만'으로 치부하거나 지휘책임을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말들도 나옵니다. 실천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합동참모본부와 지상작전사령부 전비태세검열실의 조사 결과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서욱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현장에서 경계를 담당하는 인원의 과오가 크다고 현재는 판단하고 있다"면서 "엄정한 작전 기강과 매너리즘 타파 등에 대해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일선 군인들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군복을 벗게 될까요. 나중에는 민통선 안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했는데, '어쨌든 적이 침투했다'며 누군가 또 징계를 받는 일이 얼마나 더 반복될까요.

    서 장관은 22사단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는 의원들의 질타에 "작전 요소나 자연환경 등 어려움이 많은 부대이고, 부대 편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 살펴봐야 한다"며 "사단을 정밀 진단해 볼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상급 부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요소를 찾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현장의 현실에 맞는 대책이 나올지, 앞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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