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사업의 가맹지역본부 역할을 하는 지사들이 법 보호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본사-지사 관계는 기존의 원청업체-하청업체와 다른 독특한 계약구조를 갖고 있다. 지사는 본사의 가맹정책에 따라 수입과 노동방식이 정해지지만 위수탁사업자이기 때문에 소상공인의 권리도, 노동자의 권리도 갖고 있지 않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CBS노컷뉴스는 3차례에 걸쳐 최근 불거진 신사고 아카데미 사례를 통해 영업지사의 어려움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영업지사, 무더기 계약 해지…쎈수학에 무슨 일이? ②'1년 단위 계약' 파리 목숨 영업지사들…하소연할 곳 없다 (계속) |
학생 참고서 전문 출판사 좋은책신사고의 학원 프랜차이즈 자회사 신사고아카데미가 최근 지사와의 대량 계약해지 갈등이 발생하자 지사장들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쎈수학러닝센터지사협의회 제공
#사례1지인으로부터 학원 프랜차이즈 '쎈수학러닝센터' 지사 운영을 지인으로부터 제안받은 A씨는 2019년 10월말 본사인 신사고아카데미와 지사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또 지사 운영을 위한 계약금 명목으로 본사에 1천만원을 납부했다. 1년 단위 계약이지만 해당 사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계약 갱신이 이뤄진다는 안내도 받았다.
계약에 따라 A씨는 가맹학원 1곳을 유치할 때마다 가맹학원이 본사에 내는 계약금 일부와 학원이 본사에 주문하는 교재구입비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기로 했다.
그러나 지사 영업을 시작한 지 2달여 지난 2020년 초 A씨는 본사로부터 '본사 정책 변경에 따라 더 이상 학원 가맹점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받았다. 본사가 가맹점을 받지 않는다는 건 A씨에게는 영업 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A씨는 여러 차례 본사를 찾아가 추가 가맹학원을 받지 않는 이유를 문의했지만 "조만간 바뀐 가맹정책을 알려주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수개월간 '개점 휴업' 상태로 지낸 A씨는 본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몇 달 뒤 본사는 2021년 2월 말 기준으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계약기간 만료가 그 이유였다.
지사 계약 이후 단 2달 밖에 영업활동을 하지 못한 A씨는 사실상 계약금 1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처지가 됐다. A씨는 공정위가 본사의 잘못을 찾아내 시정조치를 내리더라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미 본사와 계약 해지가 된 상태이고, 계약 해지가 무효화되더라도 계약기간이 1년에 불과하기 그간의 손해를 만회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례2국내 한 유명 영어 학원 프랜차이즈 지사장을 지낸 B씨는 최근 본사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다. B씨가 계약해지를 당했다고 표현하는 건 본사가 갑자기 본사-지사-가맹점 체제를 그만두고 갑자기 본사가 직접 가맹점을 관리하는 직영체제로 바꾸기로 한데다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B씨는 수년간 열심히 영업활동을 하며 최근에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본사의 변심으로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됐다. 지사 계약은 1년마다 갱신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속될 테니 함께 사업을 키워보자던 본사의 격려가 모두 거짓말이 된 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도 받았지만 1년 단위 계약이어서 소송전을 벌이더라도 큰 실익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가맹점 관리 한계 보완 위해 고안된 '영업지사 체계'최근 초·중·고교생 전문 학습서 출판사인 좋은책신사고㈜의 자회사 신사고아카데미가 전체 영업지사의 80%에 해당하는 지사들과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가맹본사와 지사간 맺는 '1년 단위' 계약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업체의 본사와 영업지사간 계약은 대부분 1년 단위로 이뤄진다. 또 본사와 지사간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지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도 미비하다.
편의점이나 치킨집과 같은 가맹점의 경우 가맹사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통해 최초 계약 이후 최소 10년까지 계약을 유지하도록 규정하는 등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보장받지만 지사를 대상으로 하는 법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지사는 기존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본사가 영업을 하기에는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이 크고, 사업 규모가 커질 경우 전국 가맹점 관리가 어렵다는 한계 때문에 출연했다. 현지인 가운데 영업과 가맹점 관리를 대신할 사업자를 선정해 계약을 맺으면 초기 사업 비용을 줄이고 현지 가맹점 관리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반면 지사는 본사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이용해 프랜차이즈 사업 규모를 확장해 이에 대한 대가를 수수료 형태로 받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업지사 체제는 해당 프랜차이즈 업체의 사업 성장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본사-지사간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본사는 사업 확장이 정체되면 이윤율이 하락하지만, 반대로 지사는 사업 확장이 안정 궤도에 오를 때가 초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시기다. 이 때문에 이윤율을 높이려는 본사는 지사와의 계약을 끊고 본사-가맹점 간 '직영체제'로 변경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프랜차이즈 업계 안에서 지사는 또 다른 '을'"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본사가 꺼내는 카드가 바로 '1년 단위 계약'이다. 본사 입장에서는 연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지사 입장에서 본사의 직영체제 전환은 사실상 해고통보와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서 본사와 지사간 갈등이 소송전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진정으로 증폭되지만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본사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지사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본사-지사간 계약의 귀책사유가 본사에게 있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소송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 기간 사이에 계약만료 기간이 도래해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임대차보호법이나 가맹사업법 등 갑을관계에서 '을'을 보호하는 법안도 지사를 보호하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1년 단위'의 지사 계약 관행은 갈등 발생시 '갑'인 본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원 출신 법률사무소 상원 문인곤 대표변호사는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지사는 또 다른 '을'"이라며 "본사-지점 간 1년 단위 계약은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본사가 계약만료를 핑계로 무마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본사-영업지사-가맹점, 3단계 '갑을 관계'의 맹점…개정돼야"지사가 법 보호의 사각지대로 몰리게 된 건 지사의 특수한 위치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장에서 지사는 본사를 대신해 현장 계약을 주도하고 계약 이후 가맹점 관리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본사 쪽 사람들'로 인식된다.
반면 본사에게 지사는 본사가 필요에 따라 계약한 위수탁사업자로 '을'의 입장이다. 집주인-세입자, 본사-가맹점처럼 양분된 기존의 '갑을관계'와 달리 3단계에 걸쳐 관계가 성립되면서 중간에 '낀' 입장이 돼 그동안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문 변호사는 "사실상 을의 입장인 지사도 임대차보호법이나 가맹사업법처럼 계약 갱신 기간을 확보해주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