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영화 '빛과 철'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 영남(염혜란)과 희주(김시은)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시크릿 미스터리다. 조각난 진실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영남과 희주의 감정들을 뒤쫓다 보면, 둘을 공통으로 가로지르는 하나의 감정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죄책감'이다.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의 말 한마디가 가져온 파장은 영남과 희주가 끊임없이 부딪히게 만든다. 죄책감의 무게가 희주에서 영남으로 옮겨가는 듯하지만,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며 영남과 희주는 또 다른 죄책감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영남과 희주, 그리고 둘의 감정을 뒤따르다 만나는 건, 결국 그들의 진실 찾기가 정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둘 중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만난 배종대 감독에게서 왜 그가 '죄책감'이란 감정을 건드리게 됐는지,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산 영남과 희주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들어봤다.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죄책감'을 건드리다- 영화는 '죄책감'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감독님께서 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건들게 되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죄책감'은 크든 작든 누구나 가진 감정인 거 같아요. 영화와 똑같지는 않지만 저도 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어오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나는 왜 저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등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됐죠. 인물들을 풀어내면서 제 내면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컸어요. 상처를 극복하고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가져왔어요."- 그렇다면 왜 직접 당사자가 아닌 가까운 주변의 인물을 데려오신 건가요?
"당사자가 살아있거나 말을 할 수 있을 때 답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거죠.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은 답을 얻고자 하는 인물이 죽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예요. 그렇기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죠. 정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찾아가는 과정, 이 과정을 통해서 내 상처를 마주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카메라는 영남과 희주 두 인물의 감정을 뒤따르면서 누구를 탓하거나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을 뒤쫓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지점은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대로 한쪽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두 인물이 나쁘거나 이기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남편과 가깝게 있었기에,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기에 진실을 인정했을 때 가장 먼저 상처 입고 무너지는 나약한 인물이죠. 한 사람을 100% 악인 혹은 선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잘못을 하겠지만 나쁜 사람이 아닌,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나약한 인물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인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희주와 영남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게 되지만 계속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이런 과정을 보면서 관객들이 인물들에 이입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희주나 영남을 나쁜 사람처럼 보는 게 아닐까 염려했어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관객들이 인물들을 측은하게 생각하고, 다른 식으로 삶을 살길 바랄 수 있도록 고민하며 작업했어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영남과 희주를 따라간 끝에 만나게 되는 것- 영화에서 영남과 희주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청, 산업재해, 여성 노동자 등 노동 문제의 일면을 만날 수 있게 되는데요. 사회적 문제를 영화 속에 넣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영화의 중요한 공간 배경이 된 공단은 영화의 전체 맥락과도 맞닿아 있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간이라는 존재로 보지 않고 마치 금방 교체할 수 있는 기계 부품처럼 바라보죠. 공장 시스템은 효율,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기에 한 인간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알려 하지도 않아요.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공장 사장인데, 이 사람을 실제 등장시키지 않았죠. 얼굴과 목소리가 나오면 그 사람을 악인 혹은 가해자로 몰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장을 등장시키지 않고 전체 공장이라는 상징만 건드리려고 했어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중간에 길에서 죽은 채 발견된 어린 고라니,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영남과 희주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마주하는 고라니, 이렇게 두 차례 고라니가 나오는데요. 특히 마지막 고라니를 만나는 장면은 지금까지 치열하게 격렬하게 맞부딪혀 온 두 인물의 감정이 멈추면서 환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환점 같은 순간을 고라니를 통해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 중간 사체로 나오는 고라니는 새끼 고라니, 마지막에 나오는 고라니는 어미 고라니라고 스토리텔링을 했어요. 어미 고라니는 내 죽은 새끼가 어디 있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른 채 방황하며 알 수 없는 길을 헤매며 찾아다니죠.
희주와 영남은 남편에 대해 몰랐던 것, 숨겨온 것을 알게 됐음에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죄책감을 털어놓고 인정하지만, 희주와 영남은 상대를 탓하죠. 인물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가장 힘든 인물이고, 인간이라면 내 탓이 아니길 바라잖아요.
영남의 남편이 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면 사건의 진실, 정답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병원에 가도 정답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거든요.
진실 찾기는 그만하고 끝을 알 수 없는 폭주를 무언가가 막아주길 바랐어요. 저는 고라니의 눈빛을 보며 두 사람이 은영을 떠올렸으면 했어요. 진실 찾기는 그만하고 은영을 찾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영화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찬란 제공
◇ 배우들 덕분에 행복했고,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고 만족한 장면이 두 장면이 있어요. 하나는 영남과 은영이 공장 탈의실에서 이야기하는 장면, 다른 하나는 불 꺼진 병원 로비에서 밥을 먹으면서 은영이 영남에게 자신이 본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이죠.
박지후 배우와 준비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결국 은영은 그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훈련해가는 과정이라고 말이죠. 은영의 신 중 가장 마지막에 찍었고,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며 감정을 만들었어요. 은영이 가장 빛나는 장면이자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에요. 은영의 눈빛과 목소리가 다 담겨 있고, 거기서 맞부딪히는 염혜란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게 잡혀서 그 장면을 좋아해요.
병원 로비 장면과 함께 공장 탈의실에서 영남과 희주가 처음으로 마주한 장면을 편집하면서 힘들 때마다 다시 돌려봤어요. 제일 먼저 편집했던 장면이기도 해요. 의도대로 너무 잘 나와서 제일 먼저 편집했고, 그 장면을 돌려가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했던 순간이 별로 없었어요.(웃음) 이제 개봉하게 되고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니까, 오래 품고 있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힘들었지만 순간순간 느낀 작은 행복들, 그런 장면과 그런 느낌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포착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배우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배우 그리고 그 외 등장한 모든 배우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에요."<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