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찬란 제공
'빛과 철'은 배종대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이주 노동자들의 차별과 아픔을 담은 단편 '고함'(2007)으로 영화제에 초청되고 상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낸 그는 '계절'(2009) '모험'(2011)을 통해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연출력을 선보였다.
'시체가 돌아왔다'(2012) '곡성'(2016) 연출부를 거치며 현장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온 배 감독은 '빛과 철'을 통해 장편 영화에서도 그간 가꿔 온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면서도 밀도 높게 그려내며 순간을 포착했다.
배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이끈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가 연출자를 꿈꾸게 된 시작과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우연한 계기가 감독으로 이끌다- 무엇이 연출자의 길로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빠르게 영화감독을 꿈꾸지는 않은 거 같아요. 대학 3학년 때쯤 일반인 대상의 필름 워크숍을 들었는데, 영화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서 재밌다고 생각했죠. 워크숍이 끝나고 친구들을 모아서 작은 단편영화를 만들었어요. 힘도 많이 들었지만 재미도 있고, 한 편 만드니 또 만들고 싶어서 조금 더 해보자 생각했죠. 그렇게 단편을 만들다 더 배우고 싶어서 학교에 들어갔어요. 감독이 된 건 어떻게 보면 우연적이라 할 수 있죠."- '빛과 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감독님의 손길을 거친 첫 장편 영화인데요.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이룬 성취나 배움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빛과 철'을 통해 보완할 점을 보았다면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나하나 처음부터 혼자 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어요. '이 정도면 되겠지?'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거 같아'라며 자기 합리화, 자기 타협을 많이 하죠. 그렇지만 조금 힘이 들고 눈치 보여도 한 발 더 나갔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걸 발견할 수 있어요. 감독이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끝이라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빛과 철'은 인물의 영화, 배우의 영화였는데요. 모든 시간을 배우와 이야기하는 데 썼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술, 촬영, 조명, 미술 등 스태프와 이야기할 시간이 적었죠. 스태프들이 아쉬워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 마음을 알면서도 다 품고 가기엔 제 역량이 부족했죠. 앞으로 보는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인물과 인물의 눈빛을 '포착'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스타일을 가진 연출자인가요?
"이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 많이 깨달은 게 있어요. 영화에서 가장 시네마틱한 순간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그건 '눈빛'이죠. 그리고 내가 과연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고 영화에 무엇을 담으려 할까 생각하면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요.
두 인물이 만나서 벌어지는 장면을 보고 싶고, 이 인물들이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눈빛을 보일까 그게 가장 궁금해요. 배우의 대사가 아니라 잠깐 보여준 눈빛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게 담겨 있어요. 거기에서 공감과 깊이, 인물의 이야기를 찾지 않을까요? 그 장면을 위해 다른 것을 구성해 나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걸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인물의 감정을 포착하고자 하는 게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끝까지 잃지 않고 가져 가려는 지향점일까요?
"영화는 결국 인물이고, 감정이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걸 담기 위해서 다른 건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것으로 인해 인물의 감정을 놓치면 그 영화는 저에겐 영화가 아닌 거 같아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 '화양연화'를 꿈꾸며
- 연출을 하거나 혹은 감독으로서 작업하면서 많은 영감을 주는 혹은 심적으로 위안을 주는 영화감독이 있나요?
"있긴 있는데 너무 옛날 감독이네요.(웃음) 많은 영화를 좋아하고 많은 감독을 좋아하는데, 항상 제 마음에 남는 감독은 옛날 일본 영화감독인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에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여자가 주인공이에요. 강인해 보이다가도 나약해 보이고, 감정을 품었다가 폭발하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담아내려 노력하는 감독이죠. 볼 때마다 많은 위안을 받고 행복을 느껴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 '흐트러지다' 같은 작품을 많이 좋아해요."- '빛과 철'을 보며 감정적인 위로를 받는 관객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감독님을 심적으로 위로해 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최근 봤던 것 중에 말하자면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요. 다시 보면서 저의 이상향 같은 영화였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화양연화'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다시는 영화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생각한 모든 완벽한 게 다 있어요.
저한테는 영화라는 것이 과거의 순간을 다시 재현하고 싶은 마음인 거 같아요. 그게 잘 안 되고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한 번 시도해보는 마음이 영화의 가장 큰 이유죠. '화양연화'에는 1960년대 빛났던 시절을 시간이 흘러 흘러 다시 재현해 보려는 마음, 인물에도 왕가위 감독의 마음이 다 담겨 있죠.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그만둘 수 있겠지만, 저는 계속 못 만들 것이기에 계속 영화를 만들겠죠."(웃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