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신항. 사진은 지난 4일 촬영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당국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주무 부처의 사전타당성조사에만 의존할 신공항 건설의 밑그림에 대해 우려 섞인 비판을 내놓고 있다. 또, 부산시가 제시한 공사비 등 경제성 판단을 두고도 시설 규격 등이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단정하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김해신공항, 근본적 검토 필요" 결론이 곧장 '가덕도 확정'으로?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백지화 결론을 내렸다.
2016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결정된 후보지 선정을 숱한 논란 끝에 뒤집은 것이다.
정치권은 이러한 '근본적 검토' 결론을 곧장 '가덕도'로 연결해버렸다. 국회를 통과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을 중단하고 가덕도로 입지를 확정해 신속하게 신공항 건설을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힌다.
가덕도는 당시 ADPi의 조사에서도 3개 주요 후보지 가운데 최하점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법은 '시급성'을 빌어 이곳을 밀어붙였다.
"일반적으로 신공항 건설은 공항 개발 사업의 절차를 규정한 공항시설법에 따라 추진되지만, 이 경우 입지 선정 등 사전 절차로 준공까지 시간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예타마저 생략하고 사전타당성조사로 엄밀하게 검증?
그래픽=김성기 기자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예타는 아예 면제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사전타당성조사는 신공항 건설 사업 시행자인 국토부(장관)에 의해 시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타 없이 이러한 사전타당성조사만으로 그리는 공항 건설 밑그림은 엄밀하지 못한 데다 불확실성까지 크다고 비판한다.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허희영 교수는 "정치권이 가덕도를 전면적으로 밀어붙이는 분위기에서 앞으로 국토부가 진행할 사전타당성조사 결과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부처가 내준 국책사업에 대한 연구 용역은 대부분 '맞춤형'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김병종 교수는 "예타는 수요가 예상보다 적다거나 하는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안 좋은 변수들을 중심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짙다"며 "사전타당성조사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장관은 신공항건설사업의 신속하고 원활한 추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는 문제의 조항이 '사실상 면제'라는 데에는 이견도 한다. 김 교수는 "특별법 조항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예타는 경우에 따라(운용 지침상 '국가정책적 추진' 등) 면제가 가능하다"며 "'면제할 수 있다'고 여지를 둔 만큼 새로운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반박하지만…전문가들 "사업비 단정 못 해, 침하 문제도"
연합뉴스
국토부는 앞서 국회 상임위 의원들에게 '가덕도신공항안 타당성 검토' 보고를 통해 가덕도신공항안 중 활주로2본(국제선‧국내선‧군시설 등)에 28조 6천억 원, 활주로1본(국제선)에 12조 8천억 원의 사업비가 들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타당성조사 또한 간소화했던 원안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서다.
반면 부산시는 이에 △국토부가 사실상 이전이 힘든 김해 군공항시설 이전을 포함해 계산한 점 △비용이 많이 드는 바다 매립 면적은 75%에서 43%까지 축소할 계획이 있는 점 등을 들며 반박했다.
사업비에 대해서도 2011년 국토연구원의 입지조사연구에서 7조 8천억 원(활주로 1개 건설 기준), 2016년 ADPi 조사에서 7조 4700억 원이 든다고 추산한 점 등을 들어 "7조 5400억 원가량이 적당한 수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신뢰성 높은 수치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허 교수는 "매립 문제를 논하기 앞서 인근 바다 수심을 공식적으로 제대로 실측한 적이 없는 상황"이라며 "매립을 동안에서 서안으로 바꾼다는 구상 자체가 풍향 등 변수가 어마어마하게 함께 바뀌는 건데, 가덕도는 외해에 직접 접해 영종도와 사정도 다른 만큼, 제대로 된 실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김상환 교수는 "매립뿐만 아니라, 태풍 영향을 피하기 위해 때문에 해수면보다 40m가량 고도를 높여 지반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지반 침하"라며 "지금 당장은 신공법 등을 이용해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시 손실이 매우 클 수 있어 제3자의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거대한 보수비가 들어간 간사이공항 사례가 보여주듯, 해양 매립에는 늘 지반 문제가 엮인다"며 "부산신항 건설 사례에서도 지반 침하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보다 규모도 훨씬 큰 공항은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 피해가 더 클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종 교수는 "사업비 규모는 타당성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정확한 시설의 규격이 나와야 명확해질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상태에서 단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해발 몇 미터 위에 평평한 부지를 마련할 것인지, 그러한 부지 면적은 어느 정도로 잡을지 정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지난해 '원점 검토' 얘기했지만…대통령은 "가덕도에 의지 가져라"
연합뉴스
정치권은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가덕도 밀어주기'에 집중해온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가덕도를 직접 방문하고는 "가덕도신공항은 국토부가 '역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고,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부산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검증위의 결과가 나오기 10여 일 전인 지난해 11월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의 견해는 사뭇 달랐다.
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김해신공항이 (검증위에서)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간의 모든 행정 절차가 무효로 하는 것"이라며 "수요 조사부터 원점 검토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때는 대상 지역을 열어 놓고 시작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절차 없이 바로 '특정 지역'을 정하고 적정성 검토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국토부로서는 법적 절차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따르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국토부는 현재 통과된 법안 내용에 따라 후속 절차를 이행해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