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형 기자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김창룡 경찰청장이 선제적인 수사를 주문하는 한편, 오남용을 유의해 달라고 전국 경찰에 당부했다.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영장 발부'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기 싸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신속한 수사'를 내세운 경찰의 논리가 상당 부분 관철됐다. 사실상 경찰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김창룡 "위장수사, 잠재적 범죄자 범행 의지 차단…오남용은 유의"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날 전국 경찰에게 보낸 서한문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국민 여론은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수사방식을 경찰에 요구했다"며 "위장수사가 도입됨으로써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행 의지를 사전에 차단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26일 본회의를 열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경찰이 신분 비공개 수사 또는 신분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경찰은 지난해 'n번방', '박사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했다. 같은해 7월 취임한 김 청장은 디지털성범죄를 사전에 포착하기 위해 위장수사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7개월 만에 입법화가 된 셈이다.
김 청장은 "위장수사 시 본청과 시도청에 의한 인력, 예산, 장비 지원이 강화되고 전문 수사기법 개발 등을 통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체계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를 바탕으로 책임수사체제를 확립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경찰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입법화 과정에서 위장수사로 인한 기본권침해 우려가 있었음에도 국민들께서 경찰수사의 한 방법으로 과감히 허용하고 수사관 면책조항까지 마련해 주신만큼 앞으로 위장수사 오남용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오는 9월쯤 시행 예상'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에 담긴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는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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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비공개수사'는 경찰관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사이버망 등 범죄현장에 접근, 범행 증거 및 자료 등을 수집하는 수사방법을 뜻한다. 경찰관은 성명·직업·직장 등을 일반인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다만 실존하는 타인 사칭이나 공신력 있는 증명서 생성은 하지 못한다.
해당 수사는 상급 경찰관서 수사부서장 승인으로 가능하다. 범죄 혐의와 수사의 상당성이 인정될 때, 주로 수사 이전 또는 초기 단계에서 실행된다. 수사가 종료되면 경찰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고, 국회에는 반기에 보고해야 하는 통제 장치가 있다. 수사 기간도 3개월로 제한된다.
'신분위장수사'는 신분 위장을 위한 문서, 전자기록 등을 작성·행사할 수 있다. 수사를 위해선 위장신분을 이용한 계약·거래나 성착취물 등의 판매·광고도 가능하다. 범죄혐의가 이미 충분하고 특정된 경우, 범인의 체포나 증거 수집이 어려운 상황에서 할 수 있다. 신분비공개수사 보다 위장 강도가 높은 수사인 셈이다.
해당 수사는 경찰이 신청, 검찰이 법원에 청구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긴급하면 사후에도 신청 가능하다. 수사 기간은 3개월로, 연장을 하면 최대 1년까지다.
이한형 기자
이러한 위장 수사들로 수집한 증거는 △수사·소추 및 범죄 예방 △징계 △손해배상청구 △다른 법령 규정 시 수집 증거·자료로 사용 가능하다. 위장 수사를 하는 경찰관은 고의·중과실 외에 형사·징계·손해배상이 면책된다.
다만 직무 관련자 전원에 대해선 공개·누설 금지 의무가 부여된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아울러 범죄를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함정'을 놓다가 범죄 실행 시 검거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향후 경찰은 대통령령과 위장수사 가이드라인 마련, 일선 교육과 지원 등 후속조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시행 시점은 오는 9월로 예상된다.
◇'영장 발부' 놓고 검경 기 싸움…경찰 사실상 '판정승'개정안은 지난해 4월 '잠입수사 활성화' 범정부대책 발표 이후 여야에서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며 논의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된 개정안과 관련, '영장 발부' 등을 놓고 검경 간 기 싸움이 치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영장은 검사가 청구하면 판사가 발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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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위장수사를 하려면 권한 남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경찰은 "현실적으로 수사가 시급하게 필요한 만큼, 영장 발부를 기다릴 수 없다"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또 권한 남용 차단 방법으로 국가경찰위원회,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의 역할이 있다는 대안도 내놨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지난달 초 위장 수사 기간 단축과 국가경찰위, 국회 보고 등이 담긴 중재안을 제시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지난달 8일 대정부질의에서 '영장 발부'와 관련 "영장까지 받으면 어느 세월에 이걸 하겠느냐"며 "상급 관서의 동의나 결재를 받아서 하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사실상 '시급한 수사'를 내세운 경찰의 논리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여가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법사위에서 의결됐다. 위장수사를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로 나누고, 신분위장수사의 경우 경찰이 신청하면 검사가 '의무적'으로 법원에 청구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영장 발부' 없이 경찰이 신분위장수사 신청을 법원으로부터 허가 받게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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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결 후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검사의 '의무적 청구'를 '임의적 청구'로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신청을 검사가 의무적으로 법원에 청구하는 것이 아닌, 사안에 따라 청구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최종 개정안은 의무적 청구와 임의적 청구 사이인 '필요적 청구'로 재의결 됐다. 이에 따라 경찰의 신청을 검찰이 요건에만 맞으면 법원에 청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