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배급사 제공
한국 배우 최초,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최초, 유색 인종 여성 최초, 무슬림 최초….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를 두고 영국 BBC는 "가장 다양한 오스카 후보들"이라고 표현했다. 아시아계를 비롯한 유색 인종, 여성에게 문을 열었고 이를 통해 '최초'의 기록들이 나왔다.
영화 '미나리' 속 배우 윤여정. 판씨네마㈜ 제공
◇ '최초' 수식어 단 '미나리' 윤여정, 스티븐 연…"역사적인 일"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지난 15일(현지 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를 발표한 결과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에 올라 수상까지 거머쥔 것은 제30회 시상식 당시 '사요나라'에 출연한 일본 출신 우메키 미요시다. 반세기를 넘어서야 윤여정이 아시아 배우로서 여우조연상에 지명됐다. 만약 윤여정이 수상까지 할 경우 아시아계 배우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이자,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가 된다.
영화 '미나리'에서 제이콥 역으로 열연한 배우 스티븐 연. 판씨네마㈜ 제공
'미나리'에서 아빠 제이콥 역으로 열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역시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티븐 연과 함께 남우주연상에 오른 '사운드 오브 메탈'의 리즈 아메드는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최초의 무슬림이 됐다. 또한 두 명의 아시아계 배우들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도 93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의 리즈 아메드. IMDb 제공
오스카 예측 전문 매체 골드 더비는 "스티븐 연, 윤여정, 리즈 아메드가 아시아계 배우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며 "역사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영화 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스티븐 연과 윤여정이 마침내 할리우드의 '대나무 천장'(서구 사회에서 아시아계의 기업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뜻하는 말)을 꺾었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과 윤여정뿐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크리스티나 오 역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 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비(非) 백인·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가 써가는 '최초'의 기록들올해 감독상에는 △'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그 △'맹크' 데이빗 핀처 △'미나리' 정이삭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프라미싱 영 우먼' 에머럴드 페넬 등 백인 감독 3명, 아시아계 감독 2명이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감독상 부문에서 한 명 이상의 여성이 후보에 오른 것도 93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주목 받는 감독은 비(非) 백인·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다. 그는 '노매드랜드'로 지난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성 감독으로서 역대 두 번째로 황금사자상을,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여성 감독 최초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여성 감독이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은 것은 지난 1984년 '옌틀'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최초이며, 아시아계 여성 감독으로서는 클로이 자오 감독이 첫발을 내딛게 됐다.
아카데미도 여성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여성 감독이 최초로 오스카 감독상을 거머쥔 것은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로 오스카의 벽을 뛰어넘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감독상을 받게 된다면 여성 감독으로서는 두 번째이며, 아시아계 여성 감독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 된다.
이번 후보 결과를 두고 미국 피플지는 "스티븐 연과 윤여정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역사책에 이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비올라 데이비스. IMDb 제공
◇ 오스카 다양성 노력에 기대 높아져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6명의 흑인 배우가 주·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는 데서도 의미가 깊다.
국내에 '블랙 팬서'로 잘 알려진 고(故) 채드윅 보스만('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ABC 시리즈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로 2015년 흑인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은 비올라 데이비스('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드라 데이('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vs. 빌리 홀리데이') 등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채드윅 보스만은 사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유색인종 배우가 됐다. 또한 비올라 데이비스는 2009년('다우트'), 2012년('헬프'), 2017년('펜스')에 이어 올해가 네 번째 오스카 후보 지명이다. 역대 가장 많이 후보에 오른 흑인 여배우가 된 비올라 데이비스가 2017년 조연상에 이어 올해 주연상까지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조연상에서는 '겟 아웃' '블랙 팬서' 등으로 국내 영화 팬에게도 유명한 다니엘 칼루유야('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 레슬리 오덤 주니어('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 라케이스 스탠필드('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가 후보에 지명됐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미아 닐과 자미카 윌슨은 분장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는 프로듀싱 팀이 모두 흑인으로 구성됐는데, 역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영화가 됐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오스카 역사상 배우 후보의 대다수가 백인이 아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연기 부문을 넘어 오스카의 다양성을 위한 분수령이 되는 해"라고 의미를 짚었다.